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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전부 진영 소속인데 나만 용사다. 마지막에 추가된 항목인 만큼 사람들의 이목을 샀을 법도 한데, 참전자들은 이에 대해 일언반구조차 없다.
“쯧쯧.”
안쓰러움을 담은 혓소리.
“자네가 저 용사 맞지? 칭호를 받은 각주에게 찍혔구먼?” “그게 뭔 소리-” “힘내게.”
노인의 말을 마지막으로 참전자 전원이 검은빛에 휘감겼고 나 역시 시야가 검게 덮였다. 눈꺼풀을 두세 번 오르내렸을 때, 검은 빛기둥이 세로로 갈라져 세상을 드러낸다.
방?
원룸 사이즈의 공간. 눈에 보이는 대부분이 목제로 이루어진 것보아 발달한 문명은 아닌 듯하다. 세로로 길쭉한 직사각형의 창에서 햇살이 들어와 내 몸을 비춘다.
돌아왔나. 세이프파워볼
슬라임이 아니다. 놀이터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증거.
“심속화.”
반응이 없다. 능력은 여전히 봉인된 모양. 한숨을 쉬며 좀 전부터 내 시야의 상단부를 어지럽히던 푸른 글씨에 시선을 두자 흐릿하던 그것이 짙어지며 명확한 문자를 그렸다.
【용사 헤일로】
【등급 : 평범】 【특성 : 없음】 【고용주 : 없음】 【*용사 진영에서 당신을 고용하지 않았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직접 팀을 꾸려서 던전을 탐사하면 됩니다. 먼저 여관을 나와 용사 모집소에 가보시는 건 어떠세요?】 여관. 모집소. 진영.
핵심 단어들을 되뇌며 창가로 가 삐걱대는 창문을 당겨 열자 시끄러운 소리가 귀로 쏟아진다.

“인마! 똑바로 보고 다녀!” “죄송합니다.”
“말카스 한 동이 팝니다. 15골드!” “두 동 주쇼.” “용사 진영, 히어로소울에서 끼와 재능이 넘치는 용사님 모십니다. 희귀 등급 이상만 오세요.” “저 고유등급인데 좋은 건가요?” 번화가의 중심에 위치한 여관. 거기다 이 객실은 5층이라 타인의 시선을 사지 않고도 거리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광장과 골목으로 통하는 길마다 붐비는 지하철역처럼 사람이 그득했고 그들이 뱉는 단어들로 대략적인 정보를 습득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용사에게 적대적인 지역은 아니다. 창문을 잠그고 방을 나서자 마침 계단에서 올라오던 여급과 눈이 마주쳤다.
“일어나셨네요, 용사 모집소로 가시는 건가요?” 여급은 이런 상황이 익숙해 보였다.
“숙박 대금은 어떻게 치러야 합니까?” “무소속 용사님께는 무료로 제공되는 객실이라 대금은 안 주셔도 돼요. 하지만 식사는 따로 값을 받으니까 근방에서 일을 구해보세요. 참, 죽으면 탈락이니까 몸조심, 몹조심, 사람조심. 세 가지 꼭 유념하세요.” 손가락으로 복도 벽에 걸린 액자를 가리키고 속의 글자를 읽으며 웃은 여급은 내가 나온 방을 열고 들어가 청소를 시작한다. 그 뒷모습을 잠시 보다가 의문점이 생겨 물었다.
“당신의 머리 위에 그건 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허리를 숙여 침대 아래를 걸레로 닦던 여급이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며 되물었다. 오픈홀덤
“아, 보풀 같은 게 묻었나요?” “아뇨, 그-”
말하려다 다물었다. 아무래도 내 눈, 어쩌면 용사들의 눈에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흐릿한 문자. 좀 전 내가 봤던 것과 유사한 형태. 의식을 거기에 모으자 예상대로 글자가 또렷해졌다.
【여급 마리나】
머쓱하게 웃으며 예, 라고 말하곤 대충 머리 근처의 뭔가를 집어내는 시늉을 하며 손을 털었다.


“먼지가 묻어서요.” “호호, 고마워요.” 다시 돌아서서 청소를 시작하는 그녀의 머리 위에 뜬 나머지 글자에 집중하자.
【등급 : 희귀】 【특성 : 살림】 【고용주 : 여관주 폰츠】 【*여관 일에 잘 어울리는 여인입니다. 천직을 찾았네요!】 타인의 정보도 보인다.
여급을 뒤로하고 1층으로 내려오자 식사하는 사람들과 서빙하는 종업원, 그리고 가게 가장 안쪽의 바텐더가 보였다. 그들도 전부 머리 위에 희미한 글씨를 띄우고 있었고 계단 위에서 하나하나 면밀히 살폈다.

눈에 띄는 능력을 보유한 인물은 없었다. 그나마 특이한 정보는 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컵을 닦는 바텐더가 사실은 고위 귀족의 집사였다는 것 정도.
흥미가 일긴 했으나 지금은 때가 아니라 판단, 밖으로 나와 정면에 꽂혀 있는 푯말을 보고 용사 모집소로 이동했다. 15분쯤 걸으니 탑이 눈에 들어왔고 그 입구에는 창을 든 경비병이 나른한 얼굴로 서 있었다.
『용사 모집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다가가니 경비병 중 하나가 짠 눈으로 쳐다보다 입을 연다.
“용사?” 로투스바카라
“어.”
“들어가.”
신원확인을 저렇게 해도 되는 건가? 아니면 내가 보는 걸 이들도 볼 수 있는 건가. 아니야, 보였다면 애초에 묻지도 않았겠지.
“어서 오세요!” 경비병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가진 목소리. 화사한 주황색 머리칼의 소녀가 카운터에서 방긋 웃는다. 이끌리듯 걸음을 옮기며 모집소 내부를 살폈는데, 사람은 많지 않았고 게시판 같은 곳에 모두 모여 있었다.


“방금 도착하신 분이시죠? 용사 등록부터 하시겠어요?” “그전에 몇 가지 묻고 싶은데 괜찮습니까?” “앗, 네. 널널해요. 얼마든지 물어주세요.” “용사가 원래 이렇게 적습니까?” “아하하, 아픈 부위를 찌르시네요. 용사 진영이 발족할 때면 늘 이래요.”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심계에서 표준중력이 적용되는 장소를 확보하면, 주최자와 연이 닿은 세계를 빌려온다고 한다. 대부분이 신성의 협조를 받아내는 거고 대가로 금화나 자원, 홍보 기회 등을 준다고.
경기 종류마다 대여되는 세계는 거의 정해져 있는데, 이번 같은 경우엔 원래 용사와 마왕이 대치하는 세계란다. 이들에게는 심계의 경기가 대목인 셈이다. 하지만 어디에나 그림자는 있기 마련. 용사 모집소에 방문해야 할 용사들이 전부 용사 진영에 가입하러 가는 바람에 여기는 파리만 날린다고. 이유를 물으니 그쪽이 훨씬 금화나 점수 벌이가 쉽단다.
“이렇게 제게 설명을 다 해주셔도 괜찮습니까? 저도 가버리면 어쩌시려고.” “어차피 곧 알게 되실 텐데요. 게다가 마왕의 세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면, 모집소의 수익이 줄어도 괜찮, 아얏!” “손님을 받으라고 세워뒀더니 쫓아내고 난리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랬지!” “헤헤.”

“웃기는. 어휴, 어쩌다 이런 걸 주워가지고. 이보슈, 가려면 얼른 가쇼. 속상하게 계속 서 있지 말고.” “아직 물어볼 게 더 남았습니다.” “에잉, 아주 뽕을 뽑겠다는 거구만.” 침이라도 뱉을 듯 입을 쭉 내밀다가 딸뻘 되는 소녀의 눈총을 받고는 다시 집어넣는다. 그러곤 허리춤에서 곰방대를 꺼내어 물곤, 툴툴대며 원래 카운터 안쪽의 소파에 등을 돌리고 앉는다.
“죄송해요, 이해해주세요. 저희 사장님이 꼰대셔서 요즘 용사들만 보면 아주 눈에 불을 켜고 뭐라 하세요.” 이해한다.
【용사 바훔】 파워볼사이트
【등급 : 서사】 【특성 : 냉정한 광분】 【고용주 : 없음】 【*과거 서열 39위 마왕을 단번에 베어낸 전설적인 용사. 노쇠한 그는 검을 놓고 이름을 숨긴 채 모집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마왕들은 아직 그를 기억하며 피의 복수를 위해 찾는 중입니다.】 저자는 그래도 되는 업적을 가졌다. 던전 봉인을 넘어 이 세계에서 악의 원천인 마왕을 죽였으니 용사 중의 용사.
“용사 진영으로 시작하는 자와 일반 용사는 많이 다릅니까?” “물론이죠. 용사 진영 시작은 사장으로 시작하는 거에요. 저희 모집소로 예를 들면 방금 보신 사장님과 카운터에서 손님을 상대하는 저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른 예로는 귀족과 평민처럼 출발선이 다르- 아얏! 왜 때려요!” “용사가 나은 점도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할 것 아니냐! 비켜.” “으으.”
“이봐, 딱 보니까 이제 막 소환된 놈 같은데. 과거 기억은 있나?” “있다.”


곰방대에서 흡입한 연기가 모집소의 천장으로 뿜어진다. 바훔은 또 시작이라며 우르르 나가는 용사들의 뒷모습에 시선을 둔 채 말을 이었다.
“그나마 다행이군. 특별한 능력은?” “사람의 개인 정보가 보인다.” “없겠지, 원래 용사는 그렇게 시작해야. 뭐?” “이름과 용사의 등급, 능력이 보인다.” 가느다란 바훔의 눈이 점차 커지고 반대로 입은 다물어졌다. 옆의 주황 머리 소녀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왕족이십니까?” 왕은 왕이다만, 이곳 왕은 아닌데.
“캣츠파이어.”

구부정하던 그의 허리가 군인의 그것처럼 쭉 펴진다. 소녀는 바훔의 시선을 받곤 얼른 서류를 뒤적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기록되지 않은 나라입니다. 이번에 용사의 풀을 넓히기 위해 소환 범위를 확장했다는 공문이 내려오긴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왕족까지 소환할 줄이야. 혹시 왕실의 정략이나 음해에 휘말리신 거라면, 조속히 돌려보내 드리겠습니다.” “왕이다.”
“예?”
“그리고 돌아갈 필요 없다. 짐이 곧 국가이니.” 표면세계에 모든 것이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해서 반쯤 장난으로 괜히 무게 잡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저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침을 꿀떡 삼킨다.
“혹시 그, 평가 같은 것도 보이십니까? 저희끼리는 한줄평이라고 칭합니다.” “그렇다.”
“저에 대해서도 아시겠군요.” 바훔의 목소리가 무겁다.
“어떻길 바라나.” 원하면 입을 닫아주겠다는 말을 돌려서 하자 바훔은 눈을 질끈 감더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못 보신 거로 해주십시오.” “알았다.” 파워볼게임
안도의 숨을 내쉰 그는 헛기침하면서 옆에 달라붙어 뭐냐고 묻는 소녀를 떼어내곤 내게 다가왔다.
“그런데 성함이 어찌 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헤일로.”
“성함을 입에 담아도 되겠습니까?” “허한다.”

“헤일로님. 혹시 저희 용사 모집소에서 일해보실 계획은 없으십니까?” “짐이?”
“예. 아시겠지만 사람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건, 굉장히 매력적인 능력입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왕실의 호의를 사거나 거액을 기부해야 하는데, 보통 사람이 그만한 인맥이나 돈을 구할 수 있을 리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일생을 모른 채 살아가고요. 용사도 같습니다. 진흙탕에 숨겨진 진주를, 저희가 직접 발굴해서 키우는 겁니다.” 혹하는 제안이다. 하지만 점수를 획득하기 위해선 던전을 봉인해야 한다. 이에 대해 말하니 바훔은 손뼉을 치고는.
“이번 경기는 마왕을 죽이는 게 아니군요? 잘됐습니다. 고용한 용사가 던전을 봉인하면 그 점수의 일부가 헤일로 님께 갑니다. 이 부분은 기여도라 하고 계약에도 명시할 수 있습니다. 단 며칠만이라도 좋으니 한 번 해보시는 게 어떠신지요.” “좋다만, 짐은 시간이 많지 않아. 이 경기를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 승리 조건은 상대 진영 전원 탈락. 단기간에 가능하겠는가?” 바훔은 수염 난 턱을 쓸며 골똘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로투스홀짝
“쉽지 않습니다. 경기가 열릴 때마다 적어도 3년 이상은 걸렸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진 않습니다. 하나로 똘똘 뭉친 강력한 용사들로 구성된 드림팀으로 마왕을 사냥하고 다니면 됩니다. 꿈같은 이야기이긴 합니다.” 자기도 말해놓고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는 바훔.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지.” 목표는 반년.
“당장 용사를 모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노쇠한 용사가 씩 웃는다. 자기가 용사로 고용되었던 방식을 알려주겠다며 카운터를 뛰어넘더니 나른한 경비병이 서 있던 문을 열고 나와 손바닥으로 거리를 가리킨다.
“길거리 캐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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