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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있을때 많이 배워 놓거라. 혹 쓸모없다 여길 지식이라도 그대의 긴 여행의 어딘가에선 도움이 될 터이니.” “그리하지.” “받거라.”
메리의 눈짓에 프레스가 책 한 권과 돌돌 말린 종이 한 장을 내민다.
‘스크롤!’
“이 궁에서 가장 귀한 물건이니라.” 들뜬 마음을 애써 감추며 물건을 받아 품에 넣고 물었다.
“이후 영혈은 어떻게 수급하려는가.” 메리가 필요한 건 아이들에게 먹일 영혼의 피. 반려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울 텐데. 나의 물음에 메리는 입을 가리며 웃더니 프레스에게 아주 고운 눈길을 보낸다.
“제가 해결 가능합니다.” 머뭇거리며 입고 있던 가죽 상의를 슬쩍 젖히는 프레스. 금색 비늘에 덮인 분홍빛 젖이 보였다.
신묘류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젖이 나온다.
“프레스는 정식으로 초대받아 사후세계에 왔다, 고에게는 기만이던 음식도 유효할 터.” 무슨 뜻인지 고민하다 발갛게 물든 메리의 코를 보고 이해했다.
‘메리도 프레스의 젖을 먹겠구나.’ 영혈이 사료라면 미생물 덕에 맛과 영양을 동시에 챙긴 신묘류의 젖은 츄르. 저 표정, 저 눈짓. 이미 맛본 것이 분명하다.
“훌륭하다. 프레스.” 젖으로 메리의 심신을 사로잡았구나.
“폐하의 본래 모습도 훌륭하십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프레스는 사후세계로 넘어오면서 이곳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주입받았다고 한다.
‘프레스 세대 정도면 후대가 기형적으로 커지지도 않을 테고 적절해.’ 그래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건가. 다른 문제는, 으음. 알아서 하겠지. 현재의 나는 묘류의 왕이 아니야. 오지랖부리지 말자. 로투스바카라
보상도 보상이지만, 메리에게서 받을 정보가 있다.
“신인왕전.” “그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다. 그대가 공개한 정보를 살펴보았을 땐, 8강은 가겠더구나.” “우승은 어려운가?” 적어도 신입 간의 경쟁이라면 자신 있다.


“아무리 그대라도 ‘하마르’를 상대하긴 어려울 게야. 그는 빛이다.” “전신이 빛으로 변하기라도 하는 건가?” “알고 있었는가? 하마르와 닿으면 핵폭발에 준하는 충격이 일대에 발생해. 듣기로는 아광속으로 움직인다더군. 여차하면 시간도 느리게 흐르게 하니 그대로서는 어렵게 된 일이지.” 미쳤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더니. 딱 그 짝이다.
“하지만 고가 준 스킬을 체득하면 무승부는 노려볼 수 있지.” !

품에서 메리가 준 책을 꺼냈다.
‘나는야 메탈 슬라임’ 잘 못 봤나?
다시 봐도 똑같다. 나는 황당한 얼굴로 메리를 쳐다보자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혀를 찬다. EOS파워볼
“메탈 슬라임 관련 스킬을 극성으로 익히면 모든 물리 공격을 무효화 한다. 이를 아는 자는 페이퍼 롤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귀중한 정보니라.” 메르의 뒤에 서 있던 프레스가 한쪽 눈을 찡긋한다.
‘네가 보챘구나!’ 고개를 끄덕여 고마움을 전하자 녀석은 수염을 잡는 캣츠파이어식 예로 받았다.
‘무효화. 연구가치가 높아. 이럴 때 케프라도 있었으면.’ 녀석의 빈자리가 크다.
“놈에게 물리 공격 외의 수단이 있다면?” “그대의 운이니라.” 그때 프레스가 메리의 등을 간질인다. 으읏 하는 소리를 낸 메리는 프레스를 샐쭉 노려보곤 긴 숨을 내쉬었다.
“하마르는 빛이 되는 대신 많은 것을 포기하였다. 고에게 허락된 정보는 여기까지니라.” 충분하다.
“메리, 이 방에 쌓은 보물 중 하나를 내가 가져도 된다는 약속은 아직도 유효한가?” “양심도 없는 것. 약속은 약속이니. 어디, 말해 보아라.” “이만큼 호화로운 궁이라면 빈방 하나쯤은 있겠지?” “보물이 아니라 방을?” 왜애옹.


여기 거주 환경이 예상보다 훨씬 좋다. 깨끗한 것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오성 호텔 저리 가라 할 만큼의 가구와 시설이었다.
무엇보다 조용하다. 책 읽고 수련하기 좋은 장소로 이만한 곳이 있을까.
‘교통이 불편하긴 한데, 그건 감수해야지.’ “프레스, 당신은 어떤가요? …물어볼 것도 없었군요.” 메리가 프레스를 돌아봤으나 그는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허락하마. 단. 가장 안쪽 방과 그 주변은 고의 가족이 사용하는 곳이니 인기척조차 내지 말거라.” “그리하지.” 포도빛 솜방망이가 이마를 가린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메리.
“흡.”

그런 그녀를 안아 올리는 프레스.
“제품에서 쉬시구려. 메리.” “…고마워요.” 큭.
크으윽!
내가 득을 본 상황인데, 왜 마음이 아프지.엔트리파워볼
[스킬:정신피로 면역이 ‘아, 이건.’ 고개를 젓습니다.] 젓지마, 일해! 네 역할을 해내란 말이다.
“헤일로. 그대의 표지엔 벌써 세상이 들어섰구나. 표지에 많은 것을 들이도록 하여라. 그 환경과 이야기가 그대에게 도움이 될 터이니.” *
메리의 왕궁.
첫 번째 복도 세 번째 방. 굳이 번호를 붙이자면 103호.
여긴 방이 아니라 하나의 층이었다.
거실, 주방, 화장실, 샤워실, 집무실, 서재에 세 개의 큰 방과 두 개의 작은방. 마지막으로 다락방까지.
“와.”


보드라운 호피가 덮인 푹신한 소파, 몸을 빨아들이는 듯한 침대, 음성으로 설비를 켜고 끄는 기능. 꿈에서만 그리던 풀옵션 아파트도 여기보단 못할 것이다.
이 방은 보상으로 받은 공간, 평생 거주가 허락된 거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내 집 장만을 할 줄이야.’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고 서재로 들어가 이름 모를 나무로 제작된 책상에 앉았다. 품에 넣고 한 번도 펼치지 않았던 스크롤을 꺼냈다.
“레스, 부탁해.” 돌돌말린 스크롤을 펴서 레스가 잘 볼 수 있게 위아래를 손으로 눌렀다. 전과 달리 5분이 넘도록 렌즈에 글씨를 띄우지 않는 레스.
[이건, 장물 스크롤.] “장물?”
[지금껏 ‘헤일로’가 플레이한 이야기들은 정식 절차를 밟아 페이퍼 롤에 의뢰된 스크롤.] [이건 알 수 없는 루트로 페이퍼 롤에 들어온 스크롤.] [업계에서는 장물이라 칭함.] [장물은 해독에 시간이 필요. 신인왕전 끝나기 전에 관찰 완료, 도전.] 레스의 렌즈에 활활 타는 불이 생겼다가 사라진다.
“좋아, 믿는다.” [맡겨.]
레스는 장물 스크롤을 머리 위에 올리고 표지로 들어간 뒤, 오두막 속 평상 위에 스크롤을 펼쳐 놓고 집중해서 들여다본다.
그동안 나는 패키지로 구매한 책을 하나씩 탐독하였다. 신인왕전까지 앞으로 2주. 그때까지 몇 권이나 완독하려나.

*
며칠 동안 두 권의 책을 잡고 늘어진 끝에 하나의 스킬을 익 파워볼게임 혔다. 하여, 최근 익힌 두 스킬을 정리하면.


‘염동’. 5kg에 못 미치는 나무 의자를 간신히 들어 올리는 수준. 이 힘을 내 몸에 적용하면 체중이 줄어 가벼워진다.
처음에는 엑소시스트에 등장하는 귀신처럼 폴터가이스트를 일으킬 거라 예상했으나 변기 뚜껑을 드는 게 고작이었다. 실망도 잠시, 생각을 바꿔 일상에 적용하자 신세계가 열렸다. 손 안 대고 냉장고 열어서 물먹기, 누워서 리모컨 버튼 누르기, 날벌레 잡기, 휴지 뜯기, 책장 넘기기. 사용하는 빈도가 늘어날수록 뭉뚝하게 움직이던 덩어리가 내가 상상한 모양으로 점차 변해갔다.
한 줄 평을 하자면, 잠재력이 높은 만능 스킬.
다음 스킬은 ‘마도학 개론’과 ‘바보라도 시전하는 화살 마법’을 정독해 익혔다.
마도학 개론은 제목이 그러하듯 입문서였다. 주로 ‘마법이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다루었고 유용하거나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마법이나 재료를 소개하였으며 마법사가 알아두면 좋은 상식이 담겨 있었다.
바보라도 시전하는 화살 마법은 화살을 구체화하는 수많은 방법을 작은 글씨로 늘어놓고 이 중 하나가 될 때까지 반복하라는 받아쓰기 문제집이었다. 마지막엔 화살과 관련된 스킬을 습득하기만 하면 충분하다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어, 제목과 내용이 이렇게 일치하기도 힘들지 않나 싶었다.
습득한 스킬은 ‘화살틀’.

“틀?”
레스가 구한 정보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매직 애로우’, ‘버닝 애로우’, ‘썬더 애로우’를 습득한단다. 그런데 나는 특이하게도 화살틀.
마법에 재능이 없는 건가 싶어 크게 상심했다가 마지막 문구를 보고 기운 차렸다.
틀, 이라 하면 연상되는 게 있다. 민속촌 근방에 위치한 대장간에서 잡일을 몇 달 했었는데 그때 장인이 형틀에 쇳물을 부어 드라마에서 사용할 뭉툭한 화살촉을 찍어내던 일을 옆에서 도왔다.
‘소품 담당 작가가 찾아와서 진짜처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었지.’ 화살틀은 지금 막 익혀서, 단련실로 꾸민 큰 방으로 가서 써 볼 참이었다.
“화살틀.”
부끄럽게 스킬명을 입 밖으로 내었음에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 책을 다시 훑어보려고 걸음을 돌리던 중에 처음 읽었던 책 내용이 떠올랐다.
[의지력이 곧 마나다. 상상하라, 선택하라, 침착하라.] 파워볼사이트 상상.
염동으로 마나를 끌어모은다. 마나는 헤픈 그물 사이로 빠져나가는 고래와 같아서 쉽게 모이지 않았다.
‘마나를 뭉치는 상상. 이를테면 고무 공.’ 수십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간신히 검지 크기의 마나가 뭉쳐졌다.
‘좋아. 앞뒤로 길게 늘이고 촉 부분을 뾰족하게.’ 여기까지는 그래도 단순한 조작에 불과하기에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나의 뒷부분을 당겨 장력을 부여한다는 상상과 동시에, 발사!

‘아.’
기껏 모은 마나 화살이 흩어진다.
실패. 실패. 실패의 연속.
“정말 화살틀을 만들어야 하나?” 되든 안되든 일단 해보기로 하고 마나를 응집. 화살촉을 찍어내는 틀을 상상하며 중앙에 구멍을 내려 안간힘을 썼다.
으으!

단단한 고무공의 중앙을 억지로 누르는 느낌.
‘더럽게 안되네. 처음부터 구멍 뚫린 마나 덩어리를 만들어?’ 종일 매달렸으나 소용없었다. 크기의 차이는 있어도 최종적으로는 반드시 둥근 덩어리가 되었다.
“어후, 마음같아서는 송곳으로 그냥!” 말을 내뱉기가 무섭게 또 하나의 마나가 움직여 뾰족하게 변하더니 고무공 같던 마나 덩어리의 중앙을 뚫어버린다. 그 구멍은 점점 넓어졌고 마지막엔 테두리만 남았다.
“응?”
아!
왜 염동으로 제어하는 대상이 하나라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었을까.
“왼손으로 마나 덩어리를 잡고 오른손으로 후벼판다.” “중앙의 구멍을 오목한 삼각형 홈으로 변화시킨다.” “받침과 덮개로 구성된다.” 말을 함으로써 좀 더 구체적인 상상을 할 수 있었고, 결과.
‘화살틀’을 만들 수 있었다. 쇳물, 즉 염동으로 끌어온 파워볼실시간 마나만 들이부으면 언제든지 화살촉을 찍어낼 수 있는 틀.
틀의 덮개가 열리고 처음으로 완성된 화살촉을 눈앞으로 가져왔다. 중앙이 두껍고 바깥으로 갈수록 얇아지는 이상적인 외형.
‘다 좋은데 촉의 끝이 무뎌.’ 드라마용으로 제작한 그대로다. 이 부분을 수정할 필요성을 느끼고 틀을 다시 만드려는 순간.
[스킬:염동이 ‘헤일로’의 행동에 영감을 받았습니다.] [스킬:염동이 소재를 발견합니다.] [스킬:화살틀이 염동의 요구에 순응합니다.] [염동을 모체로 화살틀이 병합됩니다.] 이렇게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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