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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화. 대단원 (2) 이항복의 승리로 끝난 전당대회.
그러나 그 격차는 굉장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심지어 당원투표와 여론조사 부문에서는 최병세가 미세하게나마 우위를 점한 상태였다. 다만 이항복이 선거인단 투표에서 우세를 점하면서 이긴 것뿐.
물론 부정경선의 가능성 따위는 전혀 없었다. 애초에 이들은 대선후보 경선룰을 놓고 박 터지게 싸운 적조차 없었으니까.
‘그래도 패배한 사람 입장에서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지.’ 이럴 때는 측근 중 일부라도 나서서 “직전 대표였던 이항복에게 유리한 경선이었다.”라고 우기는 게 정상이었다.
최병세한테 딱히 진상 기질이 있어서가 아니라 원래 경선 자체가 진흙을 적당히 묻혀가면서 뛰는 무대이기 때문이었다.
승리한 진영에서도 근소한 격차로 진 후보를 끌어안기 위해 포용적인 태도를 파워볼사이트 취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번 경선에서는 질척거리는 지분 다툼이 벌어지지 않을 예정이었다.
경선이 끝난 이후, 이항복과 가장 먼저 독대한 사람이 나라는 것이 그 증거였다.
“…늦었습니다. 권윤기 의원.” 한겨울인데도 이항복은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은 모습이었다.
전당대회 직후 2만 명 가까이 모인 체조경기장 안팎을 한 바퀴 돌면서 지지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올린 탓이었다.
그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인 채 악수를 하고, 과격한 포옹을 받고, 심지어 막판에는 목마까지 탔으니 지치는 게 정상이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라는 걸 고려하면 그보다 더 빡세게 시달려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괜찮습니다. 후보님. 이럴 때 시간 뺏어서 유감입니다.” “…바쁜 걸로 치면 권윤기 의원만 하겠습니까. 하지만 피차 바쁜 와중에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잖습니까.” “동의합니다.”
일단은 대선캠프 인선부터 논의해야 했다.

대선캠프는 철저하게 대선후보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는 조직이었다. 적어도 평시에는 그랬다. 당 대표(or 비대위원장)는 스스로 품을 낮춰서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대선후보가 전권을 휘두르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선캠프는 이항복과 나, 투톱체제로 굴러갈 예정이었다.
“권윤기 의원이 선대위원장을 맡으면 어떻겠습니까? 그냥 공동선대위원장 중 1인이 아니라 중앙상임선대위원장 말입니다.” “좋습니다. 다만.”
“아, 당연히 선거운동을 지휘하라고 이런 직위를 제안하는 건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독자적인 행보를 취하도록 하죠. 다만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된 이후 집중유세 현장에는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리 선거 자체가 요식행위가 된 상황이라지만 그래도 갖출 건 갖춰야죠.” “그렇게 말해준다면 나로서는 고맙죠.” 우리는 대선 과정에서부터 서로의 역할을 분담하기로 했다.
대선캠프가 사실상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게 된 지금은 꼭 필요한 조치였다. 실은 외부에서도 경선이 끝나기만을 기다린 눈치였고.
“…이항복 후보님. 지금까지 말은 안 했습니다만 제게 공식면담을 요청한 주요국 대사가 여럿입니다.” “압니다. 오늘 전당대회장에도 여럿 왔더군요.” 오늘 전당대회장에 내빈으로 참석한 외교사절단의 숫자만 무려 50명.
거대 정당에서 전당대회를 열면 의례적으로 찾아오는 이들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면면이 화려했다. 50개국 중 45개국에서 대사가 직접 온 것이다.
심지어 자국의 외교부 장관을 보낸 국가도 네 곳이었다. 공식적으로는 “실무 방문차 왔는데 우연히 일정이 겹친 것뿐이다.”라고 핑계를 댔지만 실제로는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하러 온 거라고 봐야 했다.


물론 K-전당대회의 우월성을 본받기 위해서 찾아온 건 아니고, 그냥 나를 만나기 위해서 온 이들이었다. 경선이 끝날 때까지는 참았겠지만,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들이대기 시작할 테지.
“50개국이라. 그 많은 사람을 권윤기 의원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죄송하지만 후보님이야말로 지금부터 10분 간격으로 짜인 일정을 소화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저를 걱정하실 처지는 아니라고 봅니다.” “허허. 그야 그런데.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내 체면 차려주겠답시고 주요국 대사들이랑 면담 같은 건 주선해주실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정식으로 취임한 이후에 오히려 혼선이 생길 가능성이 크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이항복도 합의를 봤으니 내일부터 밀려드는 면담 요청을 소화해야 할 듯했다.
웬만한 나라의 대사는 그냥 20분 남짓 만나면서 얼굴도장이나 찍으면 되겠지만, 진지하게 논의할 의제가 있는 국가도 적지 않았다. 특히 장관급을 보낸 국가에서는 나와 만날 때까지 한국을 떠나지 않겠다는 기세였다.
‘그래. 바쁘지. 바쁜데.’ 대선에 뛰어들기 전에 꼭 짚어야 하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파워볼게임
아깝게 패배한 최병세의 입지와 관련된 사안이었다.
“이항복 후보님. 최병세 전 대표는 어떻게 대우하실 작정입니까?” “글쎄요. 사실 오늘 이전까지는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습니다. 그분을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라 워낙 팽팽한 구도였으니까.” “지금이라도 고민하셔야죠. 물론 저 때문에 발생한 일이긴 합니다만 최병세 후보의 역할이 너무 애매해지지 않았습니까.” “으음.”
당연하지만 내가 최병세라는 양반을 가엾이 여겨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최병세가 대한민국의 보배 같은 정치인이라서 아껴주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서라도 그를 어느 정도 챙겨주는 것이 맞았다.
“후보님. 아마 저보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최병세 전 대표는 후보님 본인을 제외하고 공화당에서 가장 체급이 높은 분입니다. 전정권에서 총리를 지냈고, 총리실에서 나오자마자 대선후보로 차출됐었죠.” “압니다. …그리고 비록 지긴 했지만 지난 대선에서 45퍼센트를 넘게 받았었죠. 그 이후에 당 대표까지 지내셨고.” 만으로 2년쯤 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대선 재수를 허락받을 거라고 예상됐던 후보.
물론 대선후보 자리가 특정 인사의 지정석도 아닌데 자리 좀 뺏겼다고 박탈감을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위상을 차지했던 인사가 다음 정권에서 겉돌다가 그냥 은퇴하는 모습을 보이면 다른 정치인들에게 불안감을 줄 가능성이 컸다. 자신의 경력은 더 쉽게 날아갈 수 있다고 여길 테니까.
‘그러다 보면 결국 대통령이나 나한테 의존하려고 하겠지. 특히 나한테.’ 이래서야 내가 국무총리로 가는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었다. 전당대회 한 번 할 때마다 내 영향력을 빌리려고 들 테니까.
그러나 최병세에게 역할을 부여하면 그런 현상을 조금이라도 방지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방법인데. 솔직히 저도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후보님.” “…으음.”
이항복 또한 난감하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국무총리직은 이미 나한테 돌아왔고, 최병세의 나이(60대 후반)에 장관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 심지어 선수가 낮아서 국회의장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감투는 기껏해야 해외로 보내는 건데, 그렇게 하면 그냥 최병세 혼자 안락하게 지내는 데 그칠 뿐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이항복이 쓸만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최병세가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고, 심지어 다음 정권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내는 데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제안이었다. 물론 최병세 본인이 수락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나는 이항복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하고, 심지어 전령 역할까지 자처했다.
“최병세 전 대표에게는 제가 전하겠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경선에서 본인을 이겼던 상대에게 감투를 제안받는 것보다는 제가 낫겠죠. 마침 그 제안이 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구요.” “좋습니다. 부탁하죠.” 나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서 최병세에게 향했다.


전대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체조경기장에서 채 8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호텔. 엔트리파워볼
최병세는 비대한 체구를 아담한 의자에 붙인 채 권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선이 끝난 지 고작 세 시간 남짓 지났을 뿐이지만, 그는 그 짧은 시간에 5년쯤 소급해서 늙은 모습이었다.
머리숱이 조금이라도 많아 보이도록 고정시켜 놨던 헤어스타일이 풀려 있었고, 탄력 없이 늘어진 피부는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기세였다.
‘후우. 이것도 참 고역이군.’ 대선 본선이나 마찬가지인 경선.


그 대결에서 패배한 직후 가장 괴로웠던 일은 대선캠프 식구들에게 사죄하는 것이었다.
따로 월급을 주기 힘든 구조인 경선캠프에서 본인의 사재로 활동비를 부담해가며 봉사해줬던 수십 명의 인사들. 상근만 이 정도였고 간접적으로 일손을 보태줬던 이들까지 합치면 수백 명에 달했다.
그들이 느낄 상실감은, 최병세 본인과 비교해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특히 30~40대의 친구들은 일시적으로 생계마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그런 친구들을 “수고했다. 내가 부족해서 여러분에게 민폐를 끼쳤다.”라는 말 한마디로 달래는 건 참 면구스러운 일이었다.
심지어 그 직후에는 권윤기를 만나기 위해 호텔에 앉아 있는 상황. 딱히 벌을 받는 것도 아닌데 입맛이 썼다.
다행히 최병세가 완전히 쇠약해지기 전에 권윤기가 등장했다.
헌터치고는 평범한 체격에 깔끔하게 빗어넘긴 머리. 딱히 노숙해 보이려고 애를 쓰는 인간은 아닌지라 새파랗게 젊은 모습이었다.
앞으로 5년 동안 대한민국 정치권력의 절반(실은 그 이상)을 틀어쥐게 될 인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권윤기는 간단한 인사치레를 한 뒤에 입을 열었다.

“최병세 전 대표님. 대선 기간 도중에 어떻게 활동할지 방침은 정하셨는지요.” “좀 가혹한 질문이에요. …설마하니 내가 질 걸 상정하고 경선무대에 올랐을까?” “유감입니다.”
“괜찮아요. 어차피 뻔히 정해져 있는데.” 최병세는 본인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아마도 일주일 정도 휴식 기간을 거친 뒤 이항복과 전격 회동해서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가능성이 컸다. 그 이후에는 공동선대위원장 중 1인으로 합류하게 될 테고.
‘그리고 회의 몇 번, 지지유세 몇 번, 찬조연설 두어 번 하고 끝이겠지.’ 이후로는 조용히 시들어가게 될 터.
아직은 심란하지만 대선이 끝날 때쯤이면 자연스럽게 신변 정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권윤기는 최병세의 표정을 보고 뜻밖의 제안을 던졌다. EOS파워볼
“늦어도 4개월 안에 훈춘-투먼 영토 할양이 완료될 예정입니다. 지금도 관계부처 장관들이 고생하고 있더군요. 그냥 외교부에서 몇 마디 쑥덕거리고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영토 관련 문제니 행안부 장관이 고생하고 있긴 하겠네요. 권윤기 의원을 따르는 오필연 장관 말입니다.” “예, 하지만 행정구역 확정하고, 세관출장소 설치해서 공무원 좀 파견한다고 마무리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질적인 문화권에서 살아온 34만 명 이상의 주민들을 동화시키고, 북중러 사이에서 정무 감각을 발휘할 사람도 필요합니다.” “…….”
“인구만 따지면 수도권의 특례시만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기초단체장급 인사를 임명할 수는 없다는 거죠.” 곧 한국의 해외령으로 편입될 훈춘-투먼의 행정을 누가 담당할지는, 실제로 대한민국 정관계에서 중요한 이슈로 부상할 예정이었다.
보통 해외령 행정책임자는 지역 사정에 능통한 현지의 인사를 임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프랑스의 해외 레지옹, 네덜란드의 해외령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 그러나 훈춘-투먼은 그렇게 관리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었다.


중국인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는 한족, 혹은 조선족이 해당 지역을 통치하게 되면 리스크를 떠안고 사는 격이기 때문이었다.
까딱 잘못하면 혈세를 들여서 화근덩어리를 키우는 격이 될지도 몰랐다. 최병세 또한 잘 아는 사실이었다.
“결국 우리 인사를 파견해야 한다 이거군요.” “북중러를 1선에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심지어 이질적인 가치관을 지닌 주민들을 동화시키는 역할도 담당해야죠. 차기 정권에서 가장 힘든 역할이 되겠군요.” 외교관과 행정가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포지션. 자칫 잘못하면 욕만 거하게 먹고 물러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성과만 내면 다음 정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공직자가 될 가능성도 컸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확보한 해외영토의 기반을 다지는 역할이 될 테니 말이다. 아마도 포괄적인 재량권을 받게 되겠지.
최병세는 눈을 꼭 감은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권윤기가 직접적으로 “당신이 무거운 책임을 맡아줬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최병세도 눈치가 있는지라 그가 괜히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라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다행히 해외령 책임자의 장점을 잔뜩 늘어놓진 않는군. 장단점이 너무 확실한 감투니까.’ 최병세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채 2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입을 연 그였다.
“행정구역명부터 개편해야겠어요. 언제까지고 훈춘, 투먼이라고 부를 순 없으니.” 수락한다는 뜻이었다.
권윤기는 그럴 줄 알았다는 최병세에게 악수를 청해왔다. 1퍼센트 미만의 격차로 진 2등 후보의 거취 문제를 해결하고, 거기에 더해 해외령에 중량급 인사를 보낼 수 있게 돼서 기쁘다는 듯이 말이다.
실은 최병세 본인도 기꺼운 마음이었다. 그냥 공화당 상임고문으로 시들어가는 것보다는 새로운 도전이 훨씬 나았다.
힐러인데 정치 만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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