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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화. 마검의 가치 (1) [F-15E 8대 공여, F-35 12기 도입 확정. 韓美 동맹 진일보] [권윤기 “연이은 F-5 추락사고 접하면서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워싱턴 일정 이튿날. 나는 오랜만에 한나은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국의 여론을 흐뭇하게 확인하면서 말이다.
다만 이 와중에도 전투기를 넘겨받기 위한 절차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공여야 국방부에 맡기면 되지만 도입분은 내가 중개업자로 나서야 했다. 아무리 파격적인 조건이라지만 예산도 준비해야 했고.
어렵진 않았다. 내가 슬기를 시켜서 인수했던 PMC(지뢰 및 EOD 제거 전문 업체)의 전신이 무기 수입 업체이기 때문이었다. 공군에 넘길 때 수수료만 양심적으로 책정하면 될 듯했다. 양심적으로 해도 상당한 액수가 떨어지긴 하겠지만 말이다.
출장 목적을 수월하게 달성한 덕분에 나는 한나은과 함께 소소하게 자축하는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오빠, 시간이 좀 지나서 물어보는 건데요. 진짜 팔다리 새로 만들어가면서 싸웠어요?” “…….”
이게 과연 여자친구한테, 심지어 와인 마시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다가 들을 질문인가 싶어서 한나은을 멍하니 쳐다본 나였다.
볼이 분홍색으로 상기된 걸 보니 맨정신으로 던진 질문은 아닌 듯했고, 나를 초재생능력을 가진 괴물로 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내 페이스에 맞춰서 술을 먹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취한 게 아닌가 싶었다.
“팔다리를 만들긴 나도 힘들어.” “안 된다는 말은 안 하네요?” “그래. 뇌 손상도 복구한 적 있는데 못할 것도 없지.” 아무래도 중국에서 퍼뜨린 소문이 입과 입을 거치면서 와전된 모양이었다. 팔다리를 생성해가면서 싸우다니. 100퍼센트 틀린 소문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정말 고어 무비를 찍으면서 혈투를 벌인 건 아니었다.
‘아니, 보기에 따라 고어 무비일 수도 있겠네.’ 실없는 대화이긴 하지만 나쁜 시간은 아니었다. 내 팔뚝을 베고 있는 한나은의 조그만 얼굴을 보면서 떠올린 생각이었다.
불과 얼마 전에 동북아 국제 질서를 흔들어놓고 이번에는 미국으로부터 통화 스와프와 전투기까지 받아낸 나지만, 가끔은 재정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한나은은 궁금한 게 많은 눈치였다. 내 팔을 벤 채 꾸물거리다가 내가 무심코 흘려넘기고 있던 사실을 하나 짚은 그녀였다.
“오빠. 그런데 저 칼.” 한나은이 눈짓으로 가리킨 건 내 전리품. 즉 마왕의 검이었다. 요즘은 그냥 마검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미국까지 마검을 들고 온 게 좀 이상해 보일 수도 세이프파워볼 있었다. 당연하지만 위구르에서 장렬하게 떠난 마왕을 추억하기 위해서 가져온 건 아니었고, 미국 측의 간절한 요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져온 것뿐이었다. 칼 들고 찍은 사진이 필요하다나.

“그러고 보면 미국도 은근히 유치하네요.” “원래 사진 정치는 미국이 원조야. 어제 주방위총감이랑 잠깐 만났는데 사무실에 대통령, 부통령, 주지사들이랑 찍은 사진이 널려 있더라고. 미식축구 하는 나라니까 셀럽이랑 먼저 사진 찍으려고 몸싸움하는 실력도 얘네가 우위겠지.” “그렇다고 무슨 검을 들고 와요?” “솔직히 말하면 저것도 단순한 검이 아니야. 미국 애들은 아직 모르겠지만.” 내가 한나은에게 마검의 가치를 읊어주자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뭔가 궁리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말했다.
“저기, 오빠. 설마 저거 파실 건 아니죠?” “글쎄다. 아직 결정 안 했어.” 마검은, 비록 자기 치유 효과는 있지만 그 대신 막대한 마력을 잡아먹는 놈이었다. 심지어 중량까지 많이 나가서 액세서리처럼 들고 다닐 수도 없었다.
그러나 아직 가치를 예단하기는 힘들었다. 자기 치유 능력 외에 다른 옵션이 붙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컸으니까.
정확한 기능은 나 이외에는 검증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마력을 무식하게 빨아들이기 때문이었다. 나나 슬기 수준의 헌터가 아니면 칼 좀 휘두르다가 마력을 전부 빨리고 허덕거릴 가능성이 컸다.
이 점 때문에 마검의 가치는 애매했다. 어떤 기능이 있든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나와 슬기만 쓸 수 있다는 건, 세계적으로도 쓸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세계에 나나 슬기처럼 이레귤러로 짐작되는 인간은 몇 명 안 됐다.
여기서 말하는 이레귤러란 S급 게이트에서도 생명이나 부상의 위협을 느낄 일이 없는 헌터, 여타 S급 헌터들과 비교하기 힘든 헌터를 의미했다. 이런 존재가 몇 명 안 되기 때문에 S급보다 높은 등급이 신설되지 않은 거였다.
최근까지 중국에 한 명 있었지만 마왕한테 죽었고, 인도와 미국에도 한 명씩 있는 것으로 짐작됐다. 그 외에도 싹수 있는 애들이 몇 명 있긴 하지만 우리와 눈높이가 같은 애인지는 알 수 없었다.
즉 이 마검을 외교용 도구로는 쓰기 힘들다는 뜻이었다.


‘그럼….’ 실시간파워볼
지금까진 생각해본 적 없지만, 어쩌면 내가 써먹는 것이 최선일지도 몰랐다.
나는 칼에는 취미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예 관심이 없었다.
나는 보통 포탑 역할만 하고, 굳이 근접전을 벌여야 한다면 그냥 압도적인 마력으로 찍어누르는 유형이었다. 그리고 그 단순한 방법으로 검성을 상처 하나 없이 제압한 놈이기도 했다. 이능을 쓰지 않은 슬기하고도 그럭저럭 대련 상대로 어울려줄 자신은 있었고.
하지만 마왕이 남긴 유산을 활용해서 내 전투력이 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굳이 사양할 필요는 없었다.
‘안 그래도 꽤 위중한 상황이긴 해.’ 실은 요즘 전 세계에서 게이트 재난의 양상이 바뀌고 있었다. 내가 구리시 게이트에서부터 체감한 현상이었다.
게이트 출현이 잦아진 건 아니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게이트 재난의 발생 횟수 자체는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게이트 침식 요격의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민간인 피해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였고.
그러나 이 와중에 불안한 기미가 엿보이고 있었다.
게이트, 정확히는 A급이나 S급에서 등장하는 괴수들이 소수정예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었다. 거대한 게이트에서 강력한 괴수 몇 마리만 덜렁 나타나는 현상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게이트에 입장한 헌터들의 조합에 따라 강력한 괴수 한두 마리를 상대하는 게 훨씬 수월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게 아닌 경우가 더 많았다. 정말 불운한 사태가 벌어지면 괴수 한 마리한테 파티 하나가 전멸하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그런 참사가 벌어지고 있을 테고.
‘이러다가 또 다른 마왕이 등장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물론 마왕이야 오합지졸들을 우르르 끌고 나왔다가 혼자 생존한 케이스였지만.’ 결국 나는 마검을 손수 검증하기로 결심했다.
굳이 한국으로 돌아가서 시도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한국에 가봤자 게이트에 마검을 들고 들어가서 이것저것 시도해보거나 혹은 슬기랑 대련하는 방법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 상대로 실험하면 본의 아니게 죽일 수도 있으니까.
반면 미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게이트 부산물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국가였다.
솔직히 실속 없는 짓이었다.

게이트 재난 초창기에는 괴수 시체까지 꾸역꾸역 들고 와서 연구하는 국가도 많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수의 국가에서는 그럴 시간에 괴수를 빨리 죽이는 것이 이익이라고 판단하고 토벌 자체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만 이 와중에도 미국만큼은 미련을 못 버리고 매년 거액을 쓰고 있었고, 미국의 국립과학재단에서도 꼬박꼬박 예산을 배정하고 있었다. 들인 돈에 비하면 실속이 없는 편이지만 어느 정도 성과도 낸 상태였다.
나는 미국에 온 김에 그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협조를 얻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에서 마왕의 유산을 실험해준다는 사실을 반기는 눈치였다. 마검이 그냥 검이 아니라는 걸 대충 눈치챈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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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뒤, 한나은은 남자친구인 권윤기를 따라 버지니아주 알링턴으로 향했다. 미국 국방부 산하의 기술연구기관이 있는 곳이었다.
외교적으로는 떠들썩한 행사지만, 사실 그녀에게는 남자친구와의 첫 해외여행이라는 의미가 더 컸다. 실은 지금 일정도 반쯤은 놀러 가는 기분으로 하는 일이었다.
이곳은 엑소 스켈레톤이나 4족 보행 전투 로봇, 유도 탄환 같은 걸 연구하는 기관이었다. 예산이 남아도는 건지 게이트 부산물, 그중에서도 특히 무기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영화에서 볼 법한 엄청난 시설은 아니었다. 어차피 게이트에서 나오는 무기 중 태반은 그냥 튼튼한 냉병기였으니까.
그러나 초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각성자, 그중에서도 제법 실력이 있는 각성자들이 이 프로젝트의 비상근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름 학위도 가지고 있었다.
“신기하네요. 사실 한국에서는 헌터가 저학력 직군이라는 오해를 받거든요.” “미국이라고 다르진 않습니다. 헌터한테 기본적인 문해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 주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적도 있습니다.” “…….”


“원래 그런 나랍니다.”
석사학위를 가진 각성자 한 명이 한나은에게 해준 말이었다.
그 사이, 그녀의 남자친구인 권윤기는 연구인력에게 마검을 잠시 넘겨주었다. 동맹국을 우대하는 건지 성분분석까지 허락한 그였다. 마검이 특별한 이유는 소재 때문이 아니라는 확신이 든 탓이라고 했다.
이후로는 기관의 도움을 받아 마검의 숨은 기능을 찾기 시작한 그였다. 한나은도 어쩌다 보니 그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뭔가 스포츠과학연구를 떠올리게 하는 테스트가 이어졌다. 몸에 뭔가 부착한 채 이런저런 동작 지시에 따르는 모습. 아마도 마검에 신체기능을 향상하는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하는 일인 것 같았다.
단순한 장면이지만 한나은에게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처음으로 남자친구의 운동능력을 목격한 덕분이었다.
‘저 정도였어?’

몇 달째 사귀다 보니 평범한 체격에 비해 힘이 엄청나게 좋다는 건 확인한 바 있지만, 마력을 사용한 상태에서 보여주는 운동능력은 인간의 범주를 아득하게 벗어나는 수준이었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스트롱맨 대회가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정작 권윤기 본인의 얼굴은 실망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일련의 테스트를 마친 뒤에는 한나은에게 돌아와 회의적인 반응을 드러내기도 했다.
“딱히 실전에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네. 연비가 안 좋아.” 파워볼게임 “연비가 안 좋다구요?”
“마력만 엄청나게 잡아먹고 정작 돌려주는 게 전혀 없어. 마력 감응이 안 좋은 헌터라면 아마 탈진하기 직전까지 마력만 쪽쪽 빨릴 것 같아. 그나마 나나 되니까 어느 정도 선에서 조절할 수 있는 거지.” “괜한 소리를 해서 오빠 시간만 뺏었나 보네요.” “아니야. 그냥 시설 견학한 셈 치지, 뭐.” 권윤기는 실망한 표정을 애써 감추더니 한나은에게 “이다음부터는 네가 볼 수 없는 장면이다.”라고 했다. 혹시 누구랑 대련이라도 하는 건가 싶어서 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권윤기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네가 볼 장면이 아니야. 피가 낭자할 수도 있어서.” 자해한다는 뜻이구나. 한나은은 권윤기가 무슨 의도로 말하는 건지 알아듣고 얌전히 물러섰다. 몸에 상처를 내가면서 무기의 성능을 실험한다는 게 반갑진 않았지만, 권윤기의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존중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 치유 능력이라도 오빠 성에 찼으면 좋겠네.’ 그러나 한 시간쯤 뒤에 돌아온 권윤기의 표정은 여전히 심드렁했다. 이제는 마검에 대한 관심마저도 상실한 것 같았다. 정작 권윤기의 옆에 붙어 있는 연구인력은 대체 뭘 본 건지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지만 말이다.
“…힐보다는 회복 능력 자체를 극단적으로 가속하는 느낌이야.” “기대치보다는 안 좋은가 보죠? …저까지 덩달아 아쉽네요.”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가치의 물건이긴 했다. 권윤기와 비등한 수준, 혹은 그에 살짝 못 미치는 수준의 마력 용적만 가지고 있다면 제 몸을 치료하는 용도로는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어느새 권윤기의 얼굴에는 “차라리 비싸게 팔아치우는 게 낫겠다.”라고 적혀 있었다. 아예 미국에서 처분하는 게 낫다고 여기는 것 같기도 했고.
다만 권윤기가 곧바로 포기한 건 아니었다.

다음 날, 미국 측의 권유로 게이트에 들어가기로 한 그였다. 버지니아주에 출현한 A급 게이트였다. 혹시 괴수를 상대로 공격이라도 가해보면 뜻밖의 기능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지막 기대감으로 행하는 일이었다.
한나은은 뭐라도 성과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권윤기를 기다렸다.
지루하게 기다릴 필요는 없을 듯했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B급 게이트 하나를 20분 만에 토벌한 적도 있는 인간이었다. A급 게이트라고 딱히 다를 것 같진 않았다.
그런데 의외로 기다림이 길어졌다.엔트리파워볼
마왕도 잡은 권윤기가 A급 게이트에서 다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원래 게이트 재난이란 종잡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어쩌면 기현상에 휩싸인 건지도 모르고.
권윤기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꼬박 여섯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권윤기였다. 묘하게 들뜬 표정이랄까. 권윤기 자신과 함께 게이트에 들어갔던 미국의 각성자를 불러다 놓고 뭔가 당부하기도 했다.
한나은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접할 수 있었다.
“나은아. 기억하는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마왕을 마왕이라고 불렀잖아. 그때는 그냥 인민일보에서 별다른 생각 없이 붙여준 별명이었지.” “그런데요?”
“걔가 진짜 마왕이었나 봐. …그렇게 부르는 게 과하지 않아.” 경탄을 거듭하더니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골칫덩어리로 취급하던 마검을 소중하게 고쳐 쥔 권윤기였다. 그동안 홀대해서 미안하다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는 자신이 게이트에서 확인한 마검의 진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힐러인데 정치 만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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