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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화. 권윤기를 원하는 사람들 (2) 난 오랜만에 지역구인 중랑갑에 시간을 투자하기로 했다.
사실 아프리카 출장 무렵부터 한 달가량은 지역구 관리를 사무장한테 전담시키다시피 하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잠만 중랑구에서 자고 나머지 시간은 전부 국정감사장이나 의원실에서 보내곤 했다.
물론 한 달쯤 자리를 비웠다고 중랑구민들이 등을 돌릴 일은 없었다. 유권자들이 내게 65퍼센트가 넘는 몰표를 준 건 주말마다 지역구 돌면서 배드민턴장, 족구장, 라이온스클럽 이웃사랑 봉사활동 현장에 동참해달라는 의미가 아니었으니까.
‘지역구 현안을 해결해달라는 기대감이 크게 작용한 거겠지. 특히 재개발.’ 실제로 나는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도 그 기대에 부응하고 있었다.
당장 얼마 전에도 안성교 시대부터 이어진 지역사업 몇 개를 깔끔하게 치운 상태였다.
그 지역사업은 ‘중랑구 작은 미술관’ 사업과 ‘작은 도서관 사업’이었다. 타이틀만 봐도 훈훈한 사업이었고, 실제 내용 또한 아주 유익했다. 노후주택이 밀집한 지역 스물다섯 군데를 선정해서 벽화와 조형물, 미니 도서관을 설치하는 사업이었다.
이걸 중단한다고 했을 때는 크게 반발이 일어났다. 특히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컸다. 국정감사장에 있던 나한테 영통을 걸어서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권윤기 의원님. 혹시 골목길 미관 개선이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키는지 알고 계십니까? 의원님 같은 분 눈에는 소박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범죄율 낮추고 주민들 스트레스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런 주장을 하기에 기꺼이 긍정했다. 파워볼사이트

예. 실제로 도움이 된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지역의 예술가들한테 일자리도 줄 수 있죠. 삭막하고 지저분한 골목길보다는 한결 낫습니다.

그런데 왜…?

하지만 그 훈훈한 사업 때문에 재개발이 늦춰지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제대로 직시하셔야죠. 40년 된 노후주택에서 사는 분들이 진짜 원하는 게 골목길에 그려진 벽화겠습니까?

재개발이 1~2년 안에 되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기존에 설치된 동네 미술관은 유지할 겁니다. 다만 새로 짓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이고, 너무하시네. 만약 내가 다른 지역구의 국회의원이었다면 재개발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 지역구는 중랑갑. 서울에서 노후 저층 주택이 가장 많은 지역이었다. 골목길을 훈훈하게 꾸미는 건 다수의 유권자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물론 무턱대고 작은 미술관 사업만 없앤 건 아니었다. 내가 총선 때 약속했던 것처럼 신속한 재개발을 밀어붙이는 중이었다.
[중랑구청, 권윤기 의원 요청으로 주택개발과 확대 개편… 재개발 속도 낸다] [내년이면 40살 되는 망우3동 영광아파트 공공재건축 급선회로 속도감 붙어] [면목동, 대원 길드 서울 지사 본거지 되면서 기대감 상승, ‘헌터 타운’ 조성되나] 사실 재개발이 지연되는 건 재개발 자체의 매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조합원 사이의 갈등과 복잡하게 얽힌 토지 소유 관계를 감수하면서까지 사업을 추진할 메리트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내가 지역구 국회의원이 되면서 그 단점이 급속도로 보완되고 있었다.
빌라 알박기로 재개발을 지연시키던 업자들에게 제동을 걸었고, 재개발이 시행되면 크게 손해를 입게 되는 원룸 사업자들한테는 돈을 적당히 챙겨 주기로 했다. 서울시청에 민원을 넣어서 부족한 교통 인프라를 개선해준 건 덤이었고.
그런데 이런 노력 때문에 파생된 문제가 있었다. 엔트리파워볼
“의원님. 요즘 면목동 분위기가 좀 수상합니다. 의원님이 직접 해결해주셔야 합니다.” 내 지역구에서 사무장 노릇을 하고 있는 전직 지역위원장 임동출이 난처한 표정으로 올린 보고였다.
한때 총선에 두 번이나 출마했던 임동출. 지역구 사무소에서 사무장이나 하기에는 조금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임동출 본인은 별로 불만이 없어 보였다. 내가 그에게 두둑한 월급을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를 뒷배로 두고 있어서 그런지 임동출을 일개 사무장이라고 무시하는 사람 또한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권한이 강해도 그가 모든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면목 5동 재개발조합이 말썽입니다. 조합원들 기대치가 너무 높은 것 같더군요.” 이 말만 들어도 대충 어떤 말썽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면목 5동. 게이트 침식 때문에 재개발이 지연된 불운한 지역이었다. 자잘하게 흩어진 중랑구의 재개발 지역을 통틀어 가장 사이즈가 큰 지역이기도 했다. 용적률을 손본 덕분에 2천 5백 세대의 아파트를 지어 올릴 수 있는 알짜였다.
그리고 이 좋은 사업성 때문에 불거진 문제가 있었다.


면목5동에 소재한 재개발조합 사무실.
한때는 눅눅한 한숨과 욕지거리만 들리던 사무실이었지만, 권윤기의 집권 이후로는 돈 냄새가 풍기는 사무실이었다.
연말인 지금은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시공사 확정을 위한 조합원 총회는 일주일 뒤. 당연하지만 복수의 건설사에서 달라붙은 상태였다. 이미 재개발조합에서는 사업이 다 끝난 것처럼 들떠 있었다.
그리고 재개발조합의 사기가 지금처럼 오른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조합장님. 잘 좀 부탁드립니다.”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은근히 접촉해서 굽실거리는 건설회사 관계자들 덕분이었다.
지금은 과거처럼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질펀한 접대가 벌어지는 시대는 아니었다. 물론 금품이 오가거나 향응을 제공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걸리면 나가리될 수도 있다.”라는 의식 정도는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꼭 뇌물 찔러주는 것만이 로비는 아니었다.

“그, 우리 조합원들이 이주 때문에 벌써부터 걱정이 많습니다. 아시죠?” “아, 예! 그러시겠죠. 조합장님.” “면목 1지구에서는 시공사가 가구당 6천씩 이사비 지원해줬다고 하더만.” “하하, 예. 과거에는 시공사에서 이사비를 보태드리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이주비건 이사비건 원천적으로 조합에서 책임지는 게 맞긴 해요, 맞는데. 우리가 당최 여력이 있어야 말입니다. 대출 규제도 까다롭고.” “…하하.”


결국 시공사로 선정되고 싶으면 조합원들의 편의를 챙겨달라는 요구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조합장과 그 측근 몇몇이 몇억씩 챙겨 먹는 것보다는 양심적인 요구였지만, 자칫 잘못하면 나중에 입찰 무효까지 갈 수 있는 위험한 요구였다. 건설회사 입장에서도 쉽게 받아줄 수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칼자루를 쥔 조합장이 요구하는데 거절하기도 뭣한 노릇. 결국 건설사 관계자들은 대충 얼버무리면서 답변을 미뤘다.
자기들끼리 남은 재개발조합의 간부들은 자기들끼리 시선을 교환하면서 웃어 보였다.
“받아줄 것 같지?”
“그럼요. 어차피 다른 지역에서도 이 정도는 다 하는데.” “이 정도만 하나? 견학시켜주는 건설사도 흔하다고 하더만.” “견학? 견학이야 딱히 문제가 되나?” “아니, 아니. 그냥 회사 견학시켜주는 게 아니라 사실상 접대야. 특급호텔에서 며칠씩 묵게 해주고 리무진 버스로 이곳저곳 구경시켜주는 방식이라네? 선물도 주고. 그거에 비하면 우리는 솔직히 양심적이지.” “그러고 보면 우리 너무 착한 거 아닙니까?” 이들이 비교적 양심적인 축에 드는 건 사실이었다. 형편이 어려운 조합원들을 챙겨 주자는 의도로 하는 일이니까. 물론 후한 대접이 싫어서 안 받는 건 아니었고, 지역구 국회의원인 권윤기를 생각해서 몸을 사리는 것에 가까웠다.
권윤기는, 물론 중랑갑 유권자들에게는 한없이 고마운 놈이었지만 호구는 아니었다. 본인에게 폐를 끼치면 얼마든지 철퇴를 휘두를 놈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는 권윤기도 눈감아주겠죠?” 재개발조합의 이사가 꺼낸 질문이었다.
정말 궁금해서라기보다는 스스로 확신을 얻기 위해서 자문하는 것에 가까웠다. 이 정도면 권윤기도 모르는 척 지나가 주지 않을까, 대충 이런 기대였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눈감아드릴 수가 없습니다.” 사무실 밖에서 나지막하게 들린 목소리였다. 매우 익숙한 톤이었다. 그 주인공은 딱히 시간을 끌지 않고서 곧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히 권윤기였다. 평소에 얼굴 보기 힘든, 그러나 존재감만큼은 막강한 동네 국회의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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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부 재개발조합이 나를 믿고 시공사에 갑질로 오해받을 만한 짓을 일삼고 있다고 했다. 면목 5동 재개발조합이 대표적이었다.
물론 조합원들이 천성적으로 나빠서 그런 건 아니었다. 원래 재개발조합은 복마전의 장이었으니까. 그래도 이 지역 조합원들은 투자 목적으로 들어온 사람이 적어서 그런지 비교적 조심스러운 성향이었다.
그러나 시공사도 선정하기 전에 이사비, 이주비, 초과이익환수금 대납 따위를 약속받는 걸 방관할 수는 없었다.
나는 조합원들을 빤히 쳐다보다가 최대한 온화한 투로 한마디 던졌다.
“건설사한테 거액의 이사비를 약속받았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입찰 무효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알 만한 분들이 왜 이러신 겁니까?”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결국 조합장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의원님. 이게 떳떳한 짓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조합원들이 투기 목적으로 들어온 사람들도 아니고.” “예. 압니다. 이 지역에서 최소한 15년 이상 거주한 분들이 대부분이죠. 그리고 이주 비용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구요. 요즘처럼 수도권 전세 물건이 씨가 마른 시대에는 죽을 맛이겠죠.” “아니, 그걸 아시는 분께서 왜.” 조합원들은 대놓고 서운하다는 티를 내면서 나를 얄밉게 쳐다보았다. 그럴 만도 했다. 재개발로 시공사가 벌어들일 돈을 생각하면 그까짓 이사비 칠팔천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
이 서운함의 정서를 무작정 꾸짖는 건 답이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윽박지를 수도 있긴 하지.’ 하지만 게이트 침식 때문에 마음에 크나큰 생채기가 난 적 있는 재개발 조합원들은 힘으로 제압할 대상이 아니었다. 오필연 같은 여당의 권력자도, 나이지리아에서 군벌로 행세하는 대형길드의 수장도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힘으로 윽박지르는 방법밖에 모르는 놈이 아니었다.
“여러분. 제가 어설프게 준법정신이나 외치려고 이러는 줄 아십니까? 입찰이 끝나고 나면 갑을관계가 뒤집힐 수도 있어서 미리 경고하는 겁니다.” “무슨 소리…!”
“지금이야 건설사들이 여러분을 상전처럼 모시고 있죠. 하지만 시공사 입찰이 끝난 뒤에도 그 태도가 유지될 것 같습니까? 쓸개까지 빼줄 것처럼 살랑거리던 건설회사가 나중에는 늑대로 돌변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계약서만 잘 쓰면 걔들도 헛짓거리 못 합니다.” “죄송하지만 저쪽은 전문가들입니다. 수백 명의 전문인력을 거느리고 있어요. 갑을이 바뀌고 나면 지금 약속받은 이사비가 오히려 족쇄가 될 겁니다.” “…….”
실제로 시공계약이 체결되고 1~2년쯤 지나고 나면 건설회사가 목줄을 쥐는 경우가 꽤 있었다.
조합원 중에 변호사가 즐비한 강남3구 조합들조차도 시공사한테 질질 끌려다니는 경우가 있을 정도였다. 무상으로 해주기로 했던 수천억짜리 조경 공사가 은근슬쩍 공사비에 포함되거나 공짜 인테리어 약속이 조용히 누락되는 식이었다.


내 말에 조합원들이 곧바로 납득한 건 아니었다. 조합장의 얼굴에 “건설회사 갑질 정도는 당신이 해결해줄 수 있지 않냐?”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 사실 전부 해결해줄 수 있었다. 로투스바카라
하지만 나는 지역구 관리를 위해서 그런 짓까지 할 생각이 없었다. 초법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서 아무 때나 남용하면 탈이 나기 마련이었다. 모든 현안을 힘으로만 해결할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정치를 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조합원들과 잠깐 눈을 맞추고 있다가 문득 쓴웃음을 머금었다.
“여러분. 혹시 제가 아프리카에서 LC그룹과 협력했던 거 아십니까?” “압니다. 그건 왜…?”

“대기업을 괜히 무섭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처음에는 제가 갑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주도권이 넘어가 있더군요. 자세히 밝힐 내용은 아니지만.” 나는 운만 띄운 뒤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하면 상대는 억측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권윤기 같은 인간도 누구한테 뒤통수를 맞는구나, 아니면 뭔가 영악한 수에 당해서 자기도 모르게 이용당했나 보다, 대충 이런 억측들.
물론 LC그룹과 내 관계는 지금도 양호했다. 쿨거래에 성공했는데 왜 사이가 나쁘겠는가. 과장 좀 보태면 나한테 오너일가 딸내미라도 시집 보낼 듯한 기세였다. 그러나 한국인의 정서상 대기업의 음험한 면모를 거론하면 먹힐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 괜히 스스로 발목에 족쇄 채우는 짓은 하지 맙시다. 지금 이대로 가도 여러분의 오랜 기다림을 보상할 정도의 수익은 나올 겁니다.” “…예에. 권 의원.”
조합원들은 한풀 꺾인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외에도 재개발조합 몇 군데에 사람을 보내서 점잖게 단속했다.
물론 나중에 가면 재개발 이주 비용 대출 규제 완화 등을 꺼내서 조합원들을 다독이는 것도 잊지 않을 생각이었다. 유권자들과의 적당한 밀당은 기본이었다. 무턱대고 예스만 외치는 것도, 쌀쌀맞게 구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나는 이후로도 크고 작은 지역구 민 오픈홀덤 원 몇 개를 해결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에 시간을 투자한 대가를 치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해가 바뀌어 있었다.
나도 이제 서른다섯. 외모야 지금도 파릇하지만 헌터업계 기준으로는 중견 소리를 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나이였다. 국회의원으로서도 임기 2년 차에 접어들었으니 초짜라고 할 순 없었고.
‘나름대로 열심히 달리긴 했지.’ 나는 이미 계파 하나를 거느리고 있었고, 헌터업계도 온전히 장악한 지 오래였다. 짬을 내서 평화당의 실세 한 명을 수술했고, 외교부를 충실한 파트너로 삼은 상태였다. 안타깝지만 이제 풋풋한 정치신인을 자처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힐러인데 정치 만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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