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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화당의 권윤기 (1) > 유종승이 나한테 성과 보고를 올린 건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최병세 대표와의 협상이 끝나자마자 전화부터 건 듯했다.
“최병세 대표가 방금 승복했습니다.” “이렇게 빨리 말입니까?” 딱히 유종승을 치하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빠른 속도였다.
유종승이 나한테 숙이고 들어온 건 불과 나흘 전. 물론 유종승이 나태하게 굴지 않도록 내가 채찍질을 가하긴 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빨리 성과를 거둘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곧이어 본인이 따낸 공천권 내역을 디테일하게 설명하기 시작한 그였다.
“일단 공화당 비례대표 6번을 보장합니다.” “당선 확정권이네요.” “예. 이 슬롯은 남녀노소를 불문합니다. 당대표의 비례대표 전략공천 권한을 소진해서 내주는 번호니까요. 다만 품행이 극도로 불량하거나 과거 행적이 지저분한 인사는 곤란합니다.” 인간쓰레기만 아니면 아무나 꽂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당연하지. 하자 많은 인간은 나도 사양이니.’ 나도 양아치를 내 사람으로 끌어들일 생각은 없었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나한테 충성을 바치는 인간을 간택해야겠지만, 그렇다고 함량 미달의 인간에게 금배지를 달아줄 필요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국국민당이라는 군소정당이 하나 있습니다. 공화당에서 탈당한 국회의원이 설립한 정당인데, 표면적으로는 독립적인 정당입니다만 실제로는 공화당의 새끼 정당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거기에 한 명쯤 꽂을 수 있다는 겁니까?” “예. 꽂으시면 됩니다.” 너무 태연한 대답이라 그에게 지령을 내린 나도 잠시 멈칫할 정도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종승은 내가 누구를 어떻게 꽂을 수 있는지 자세히 안내했다. 소장파 정치인이라기보다 거의 공천 가이드 수준이었다.


“한국국민당 비례대표 3번에 한 명 추천하시면 됩니다. 홀수 번호인 만큼 당연히 여성을 추천하셔야겠죠. 성별을 제한한다는 점이 거슬리실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는 지켜 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화당 비례대표 8번을 보장합니다. 아슬아슬한 번호이긴 합니다만, 어쨌거나 당선 가능권입니다. 다만 이 자리에는 만 32세 미만의 청년을 추천하셔야 합니다.” “······.”
“여기까지 비례대표만 세 명입니다. 그리고 지역구는···.” 일단 내 측근인 천서진 의원에게는 수도권에서 전략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겠다고 했다. 그녀가 은근히 노리고 있던 용인갑에 밀어주겠다나. 용인갑이면 공화당에 불리한 지역은 아니었다.
이건 비례대표 공천에 비하면 약소한 조건일 수도 있었다. 이미 천서진은 비례따리치고 유명한 축에 드는 금배지였으니까. 가족연대를 저격한 이후부터 그녀는 듣보잡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제주도 공천을 휘젓는 것도 일정 수준까지는 허용하겠다고 했다.
후보들을 대원 길드에 출석시켜서 면접을 보는 건 곤란하겠지만, 선거법을 준수하는 선에서 특정 후보를 밀어주는 건 눈감아주겠다고 했다. 이 정도면 제주도 3석 모두 내가 주무를 수 있을 듯했다.
‘이 정도로 해낼 줄이야. 기대 이상이군.’ 사실 나는 유종승이 공천장 여섯 장만 확실하게 가져와도 너그럽게 받아줄 생각이었다. 그 정도만 해도 기대치를 충족하는 실적이니까. 그런데 일곱 장을 가져왔으니 칭찬해줄 일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보너스까지 있다고 했다.
“아, 그리고 권윤기 부회장님.” “말씀하세요.” 세이프게임

“일주일 뒤에 공화당 당사에 오셔서 헌터협회-공화당 간의 정책협약서에 사인 한 번만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때는 권슬기 회장도 데려오셔야 합니다. 그래야 상징적인 장면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말하세요.”
“부회장님은 같은 날에 입당신청서까지 제출하시면 됩니다. 입당과 동시에 게이트 대응 특별위원장직을 맡게 되실 겁니다. 이번에 권윤기 부회장님을 위해 신설한 당직입니다.
내 당직까지 미리 마련해놨다는 소리였다.
게이트 대응 특별위원장. 사실 역삼게이트 이전까지만 해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게이트 관련 당직을 임명하곤 했었다. 헌터에 대한 반감이 커진 이후로는 자취를 감췄지만 말이다.
그런데 내가 입당을 결심한 덕분에 오랜만에 게이트 당직이 부활하게 된 셈이었다.


내 힘으로 충분히 따낼 수 있는 당직이긴 했다. 내가 헌터치고 이미지가 좋은 편인 만큼 공화당이 당직 하나 내주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유종승이 나를 위해 레드카펫을 깔아줬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었다. 그의 공적을 폄훼할 생각도 없었다.
‘이 양반도 마음을 독하게 먹었구만.’ 60세가 넘은 중진 국회의원이 아들뻘인(실제로 나랑 동갑인 아들이 있다고 했다.) 나를 위해 온갖 염병을 떨었다는 것만으로도 진정성은 인정해줘야 했다. 유종승은 내게 진심으로 충성하고 있었다.
유종승이 이 충성의 대가로 딱 하나 내건 조건이 있었다. 파워볼사이트
“권윤기 부회장님. 저는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인정합니다.”
“부회장님께 한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물론 거절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만 제 노력을 인정하신다면 진지하게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일단 들어나 보죠.” “공화당이 총선에서 이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세요. 총선에서 승리해야 제가 권윤기 부회장님을 더 효과적으로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
“부탁합니다.”
유종승의 말투는 지극히 정중했다. 본인이 가진 자산을 올인한 종목이 양봉을 띄우기만을 바라는 투자자의 태도였다.
나는 유종승의 이 바람에 기꺼이 응하기로 했다.

그의 절박함에 마음이 동한 건 아니었다. 나는 애초부터 공화당이 총선에서 이길 수 있도록 기여할 생각이었다. 헌터업계의 최대 실세를 품은 정당이 총선에서 이기는 것 자체가 상징적인 사건이 될 테니까.
그러나 립서비스 한두 마디로 내 충복을 자처하는 국회의원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유종승 의원.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죠.” 이제 굳이 ‘님’자도 붙이지 않기로 했다. 새삼스러울 것 같아서였다.


“감사합니다. 권윤기 부회장님.” 유종승은 잠긴 목소리로 사례하더니 곧 전화를 끊었다. 목소리만 들으면 소주 한 병 원샷하고 잠자리에 들 것만 같았다. 그러나 유종승은 쉬기는커녕 오히려 적극적인 활동에 나섰다.
[헌터업계 개혁은 일생일대의 과제··· 권윤기와 의기투합한 유종승] [“헌터들 악의 축으로 몰아가는 건 답이 아니야.” 유종승의 소신] 이런 기사를 양산하고 있는 유종승이었다. 단순히 보도자료만 뿌리는 게 아니었다. 라디오건 유튜브건 가리지 않고 출연하면서 나를 헌신적으로 띄워주고 있었다.

  • 권윤기 부회장과 처음 소통하기 시작한 건 3개월 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주기적으로 연락하면서 정견을 나눴습니다. 조만간 함께 토벌 수당 합리화를 발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권윤기 부회장에게 정치권에 진출해주십사 하고 몇 달에 걸쳐서 설득하고 있습니다. 겸손한 분이라서 그런지 헌터가 정치권력까지 쥐는 것이 도의적으로 옳은 일인지 고민하시더군요. 그래도 어떻게든 설득할 생각입니다.
  • 개인적으로 정말 탄복했습니다. 권윤기 부회장이야말로 각성자와 비각성자 간의 묵은 앙금을 풀어낼 수 있는 적임자라고···.
    이렇게 썰을 풀고 다니면서 나를 빨아주는 모습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몇 개월 전부터 공화당과 은밀히 소통하면서 헌터업계의 개혁을 꾀한 선지자이자 공화당에서 꼭 영입해야 하는 인재였다.
    ‘제 딴에는 정말 애 쓰는구만,’ 유종승이 이렇게 애쓰고 있으니 내가 일주일 뒤에 슬기를 데리고 공화당 당사에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화제는 될 듯했다. 슬기의 눈치만 살피는 평화당을 제치고 실적을 올릴 기회니까.
    하지만 그 일주일 동안 가만히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공화당이 총선에서 이기게 해달라 이거지?’ 그러려면 나를 영입하는 것이 공화당에 엄청난 이익이 되도록 포장해야 했다.
    지금부터 뭔가를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실은 유종승이 당대표와 거래를 트는 동안 물밑에서 준비한 이벤트가 하나 있었다. 성공하기만 하면 입당하는 시점에 맞춰서 나에 대한 주목도가 극한까지 올라갈 터.
    나는 곧바로 전화를 돌려서 실행을 지시했다. 세이프파워볼

다음 날, 외교부 청사.

의전행사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아침부터 술렁거리고 있었다.
딱히 사고가 터지거나 한 건 아니었다. 한국 외교부는 의전만큼은 꽤 잘하는 편이었다. 순방 과정에서는 종종 사고가 터질 때도 있지만, 외국 귀빈을 접수하는 솜씨는 우수했다.
그들이 지금 버벅거리는 이유는 하나였다. 터키의 웬 장관이 사전 협의도 없이 갑작스럽게 방한한 탓이었다.
“그, 게이트 안전보장부 장관이라는데 거기가 뭐 하는 부처랍니까? 이름만 봐도 대충 짐작은 가지만.” “우리 쪽 게이트 관리위랑 상응하는 부처라고 보면 됩니다. 근데 어차피 실무 방문도 아닌데 개입할 필요가 있나?” “그래도 상대가 장관이잖아. 아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럼 일단 게이트 관리위 통해서···.” “아니, 거기에 국제교류 담당할 수 있는 부서가 있냐고. 다 떠나서 어차피 핫바지들인데.” 이번에 방문하는 건 터키의 게이트 안전보장부 장관이었다. 이름은 슐레이만 일마즈.
터키는, 물론 국력만 놓고 평가해도 지역 강국 체급은 되지만 게이트와 관련해서는 영프독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게이트 재난이 처음 시작됐을 때부터 국력을 꼬라박아서 헌터 양성을 체계화한 덕분이었다.
당연하지만 헌터에 대한 예우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돈이야 한국 헌터들보다 못 벌지만, 정관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했다. 게이트 대응을 담당하는 게이트 안전보장부는 내각에서도 핵심 부처로 취급받고 있었고.
“근데··· 헌터네? 그것도 S급. 헌터가 무슨 장관을 해.” “우리한테나 이상한 거지 터키에서는 당연한 겁니다. 대통령 최측근이기도 하구요. 괴수만 죽이는 게 아니라 가끔 사람도 잡는다고 하던데?” “그건 됐고. 대체 뭐 하러 온 거야. 여기까지.” 굳이 따지면 의전 따위를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사적 방문의 형태로 찾아오는 인사였다.
하지만 아무리 사적 방문이라도 이렇듯 깜깜이로 방한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공적 목적이 아니라고 해도 실제로는 정무적인 활동을 펼치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외교부에서는 곧이어 주한터키대사관에 접촉해서 슐레이만 일마즈의 방문 목적을 물어봤다.
그러나 대사관에서도 묵묵부답이었다.
한국 외교부가 뭐라고 지껄이건 무시하는 건 아니었고, “정말 사적인 목적의 방문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라면서 점잖게 사양하는 식이었다. 심지어 혼란을 줘서 미안하다는 말까지 했다.
이렇게까지 철벽을 치면 외교부에서도 방법이 없었다. 실시간파워볼


“이 정도면 신경 쓰는 게 오히려 민폐겠는데?” “그러게요.”
터키의 실세라고 하지만 어차피 정상급도 아니고, 공식 목적으로 방문하는 것도 아니었다. 게이트 관리위에서도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면서 그저 멍만 때리고 있었다.
터키대사관이나 문화원에서도 관심을 거절하는 상황. 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사적으로 방문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냥 접읍시다. 알아서 놀다 가겠지.” 결국 외교부는 슐레이만 일마즈의 방한에 일체 관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전 통보도 없이 찾아오는 장관까지 신경 쓰기에는 외교부가 너무 바쁜 부처였다. 그냥 시비에 휘말리지만 않기만을 기대할 뿐이었다.
외교부가 잠깐 집적거리다가 철수한 사이, 터키의 슐레이만 일마즈는 수행원 한 명만 달고서 한국에 도착했다.
이제 갓 50줄에 들어선 중키의 사내. 머리가 반쯤 벗어진 평범한 외모였다.
비록 기사 한 줄도 나지 않은 비공식 방문이지만 헌터 협회에서만큼은 융숭한 대접을 받은 그였다. 부회장단 여러 명이 어설프게나마 성의를 갖춰서 슐레이만을 맞이해준 것이다.
“장관님. 환영합니다.” 도검류 회사 사장을 겸하고 있다는 부회장 한 명이 괜히 친한 척을 하면서 들이댔지만, 슐레이만은 잠자코 악수나 하면서 웃어넘겼다. 그는 낯선 사람들한테 인사나 받으러 온 게 아니었다.
그가 만나러 온 대상은 단 한 명, 대외협력부회장인 권윤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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