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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벽비거(2) > 영혼까지 말라붙을 것만 같은 지독한 갈증.
승리 조건이 공개된 순간을 기점으로 전신의 수분이 급속도로 줄어든다.
헉 소리가 터져 나올 정도로 목이 탄다. 끔찍한 갈증에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붙으면서 피부 역시 빠른 속도로 윤기를 잃어간다. 크헉, 미, 미친? 이번에는 또 뭐냐고.
탈수 증상을 일으켜서 나를 죽이려는 건가?
‘염병.’
아니, 단순히 갈증만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세이프게임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만큼 극심한 허기가 나를 덮친다.
끄흐허억, 쓰, 쓰벌. 괜한 소리가 아니라 진심으로 감당이 안 될 정도다. 아마도 아사(餓死) 직전의 인간이 이런 고통을 느끼지 않을까. 머리가 어지럽다. 전신의 기력이 다 빠져나간 느낌이다. 저, 정신 차려, 정우현. 빨리 움직여.
‘이, 일단은 수분부터.’ 황급히 가방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들었다.
윌틈 퀄른의 다른 각성자에게 선물 받은 <아모르 산양의 물샘>. 이 희귀한 가죽 주머니는 최대 4, 50리터에 달하는 물을 시원하게 보관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백송아에게 물었더니? 이게 또 각성자들의 워너비 아이템이란다. 계층을 오르는데 필수라고 해서 결국 기존의 수통을 이것으로 대체했··· “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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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물샘을 기울였는데 물이 안 나온다.
자, 잠시만 이럴 리가 없는데? 분명 한계치까지 물을 꽉꽉 눌러 담았었잖아?
정신이 아찔하다. 설마 퀘스트 시작과 동시에 한 방울도 남김없이 사라져버린 건가? 확실하다. 식량도 다 사라졌다. 별 수 없이 증발되지 않은 포션 하나를 마셔봤다.

어?
뭐, 뭐냐고. 왜 이걸로는 갈증 해소가 안 되는 건데.
정확한 이유가 뭐지? 포션도 액체잖아. 왜 몸이 수분으로 인식을 못하냐고.
씨발, 이러면 완전히 엿 된 거다. 눈의 초점이 점차 어긋나는 게 느껴진다. 고개를 흔들어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 1초 1초가 계속해서 다른 느낌이다.
‘빠, 빨리 물! 물을!’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컨디션이 순식간에 최악이 됐다. 시원하게 물보라를 일으키는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오, 물이다. 엄청 많잖아? 저 시원한 걸 위장이 터질 때까지 마시고 싶다. 귀신에라도 홀린 듯이 다가가 물에 입을 가져다 대는데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대체 왜 이러지? 미쳤냐? 갑자기 왜 이래?
“허억······! 허억······!” 단순히 수분 부족이나 허기로 인한 증상이 아닌 것 같다.
계층 전체에 사람의 판단력을 저하시키는 묘한 기운이 감돈다. 불과 몇 분 만에 주변의 모든 것이 지옥으로 변해버린 느낌이다. 썩을. 그럼 그렇지. 휴양지는 얼어 뒈질 놈의 휴양지··· 흐억, 뜨거! 태양빛이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보다 몇 배는 더 따갑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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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이 아니다. 정말로 몇 세이프파워볼 배나 더 뜨거워졌다.
‘이건 또 뭔?’
치지지직 소리를 내며 피부에 약간의 물집이 잡혔다.
가면 갈수록 더 거칠어지는 호흡을 달래며 황급히 나무 그늘로 이동했다.
생각해라, 정우현. 생각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라고. 정신이 혼미해지려고 해서 몇 차례나 뺨을 후려갈겼다. 다른 건 몰라도 정신줄을 놓으면 확실하게 모든 게 끝이다.
정신 차려. 일단 뭐부터 필요하지? 물? 식량? 그늘?
‘물. 당연히 물이지.’ 현기증 때문에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걸 간신히 참았다.
쓸데없이 토하기라도 하면 분명 지금보다 더 많은 양의 수분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아니, 아니지. 수분 좀 잃어버리면 뭐 어때서. 저기 바다 좀 보라고. 물이 저렇게 많은데 뭔 걱정을······ 미친! 미친! 미친! 나 또 왜 이래? 야, 정우현! 정신 좀 차리라고!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 이거. 뇌가 통째로 이상해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위험한데 이거.’
정신을 바짝 차리고 넘어가보려고 했더니 도저히 안 되겠다.
일단은 사람의 정신을 건드는 이 묘한 기운에 어떻게든 저항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할 수 없지. 이전 계층에서 얻은 프리 스탯을 쓰자. 장담하는데 <직관> 능력치의 수치 값을 올리면 분명히 효과가 나타날 거다. 젠장. 상태창을 띄우고 New 부분을 클릭하려는데 힘이 빠진 손가락 끝부분이 달달 떨린다.

능력치(Status) – 프리 스탯 : 23 (레벨업 17 + 클리어 보상 6) New!
근력 : 86 / 민첩 : 216 / 체력 : 26 / 마력 : 14 방어 : 20 / 직관 : 21 / 집중 : 21 / 특화 : 17 11계층 공략과 동시에 얻은 총 23의 프리 스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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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곧바로 직관에 때려 박아 수치를 44로 만들었다. 하필이면 재수 없게 44?
내가 숫자 4를 얼마나 싫어하는······ 아니, 숫자 따위가 뭔 상관이냐고 지금. 사고가 계속해서 1차원적으로 변하려고 한다. 하, 큰일이네 이거. 직관 수치를 올렸는데도 완벽하게 맨 정신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건가? 수분 부족을 해결하면 조금 나아질까?
‘아 맞다! 은하 상점!’ 그 파워볼게임사이트 때 번쩍하고 <은하 스트리밍 전용 상점>이 떠올랐다.
왜 진작 이 생각을 못했을까. 성좌들의 말에 따르면 전용 상점에는 없는 게 없다고 했었지.
하긴 페이지가 99만 9999개나 되고, 심지어 다른 차원의 음식까지 팔고 있을 정도니 당연히 물도 있겠지? 그럼 라이프를 지불하고 구매하기만 하면 간단하잖아.
난 도대체 왜 이런 개고생을 하고 있는 거지?
‘헉?’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시작부터 모든 게 꼬여버렸다.
상점창이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니 왜. 이건 또 왜 안 되는 건데.
저번과 똑같이 스트리밍 창을 대기 상태로 두고, 은한 스트리밍 전용 상점에 접속을 시도했다. 안 된다. 몇 번을 반복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갈증이 더 극심해지는 것 같다. 그 때 성좌들의 메시지가 주르르륵 떴다.
[길 잃은 헤일로의 별 : 뭐야, 우리 특이점 ㄷㄷ 설마 상점을 열려고 했던 거야?] [배고픈 귀염뽀짝 : 평소엔 전용 상점에서 물을 구매할 수 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못 사.] [두 얼굴의 여군주 : 어리석구나. 퀘스트 도중에는 상점 이용이 불가능하단 걸 몰랐느냐?] [황혼에 잠드는 고룡 : 우, 우리 특이점님 어떡해요. 세상에. 너무 힘들어 보여요.] [달을 삼킨 살육자 : 여태까지 잘 해놓고 멍청하게 이딴 곳에서 죽지마라.] [아스탈로트의 지배자가 당신에게 ‘Life 50일’ 치를 후원합니다.] [길 잃은 헤일로의 별 : 어휴, 이 영감탱이는 시도 때도 없이 후원질이야?] 그랬던 건가. 퀘스트 도중엔 상점 이용 불가였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초조해졌다. 할 수 없이 고개를 돌려 뒤편에 위치한 거대한 숲 속을 바라보았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뭔가 쓸 만한 걸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뜻밖에 수원(水原)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 제발, 제발 그렇게 되기를 간절하게 빌었다. 지금 이곳이 평범한 육지인지, 혹은 외딴 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발 있어라. 제발.’ 사실 물을 찾는 다른 방법도 있긴 있었다.
축축한 땅을 파거나 햇빛으로 바닷물을 증류시키는 방법이.
하지만 지금 당장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수증기가 한 방울 한 방울씩 맺히는 걸 계속해서 인내할 여유도 없다. 뜨겁게 달아오른 모래사장과 살점을 태우는 햇빛 속으로 다시 걸어 나가는 것도 자신이 없다. 어지럽다. 속이 메슥거린다.
‘썩을, 썩을, 썩을.’ 예민한 후각 스킬을 켜고 비틀대면서 숲 속을 걸었다.
이제 대놓고 눈앞이 흐릿하면서 정신이 혼미하다. 그렇게 3분여가 지나고 하늘이 노랗게 변해서 잠시 나무에 기댄 그 때. 익숙한 비주얼의 무언가가 보였다. 자, 잠시만. 저거 설마? 마치 기다렸다는 듯 관찰창이 활성화 된다. 글자를 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분명히, 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 식물이다.
[오틀레이 야자수]
아이템 등급 : E+ 버프 효과 : 근처에 머무를 시 화염 저항 + 2 재사용 대기시간 : 없음.
특징 : 야자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살았다.’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오틀레이 야자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나무 위로 올라가 총 7개에 달하는 야자열매를 확보했다.

두꺼운 껍질을 주먹으로 단숨에 파워볼사이트 깨부수고, 안쪽에서 찰랑이는 액체를 허겁지겁 들이켰다. 크! 한 개를 다 마시고 나니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시원하고 달달하다. 비실비실 죽어가던 세포들이 마치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
[오틀레이 야자열매] 아이템 등급 : E
사용 효과 : 섭취 시 60분 동안 화염 저항 + 4 재사용 대기시간 : 없음.
특징 : 시원하고 달콤한 액체를 머금고 있다.
‘조, 조금만. 조금만 더.’ 잠시도 쉬지 않고 욕망에 차서 연달아 4개를 마셔버렸다.


생각 같아선 전부 다 마시고 싶을 정도였지만 꾸욱 참았다. 후아, 살았다.
급한 불, 아니 급한 물은 껐다. 그제야 정신도 조금 맑아지고 약간의 자제력이 생겼다. 지독한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 껍질 안쪽에 붙은 코코넛 과육을 단검으로 박박 긁어먹었다. 후, 좋아. 이제야 조금 살 것 같네.
‘진짜 죽다 살았네.’ 야자열매 3개는 만에 하나의 사태에 대비해 잘 챙겨뒀다.
구토를 유발하던 어지러움증과 흐릿하던 눈동자 역시 상당부분 회복되었다. 무엇보다 열매의 사용 효과인 화염 저항이 중첩된 덕분인지, 태양 열기가 아까 전보다는 확실히 덜 고통스러웠다. 참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만약 야자수를 못 찾았으면 상황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아니, 잡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3일 분량의 식량과 물인가.’ 정신이 비교적 멀쩡할 때 주변을 최대한 탐색하자.
그때부터 약 20여 분간 숲의 여기저기를 바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야자수 몇 그루를 추가로 찾아냈고, 독이 없고 먹을 수 있는 열매도 발견했다. 하, 살았다. 이번엔 진짜 죽는 줄 알았네. 내일은 몰라도 일단 오늘은 확실히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수확물들을 챙겨서 최대한 태양빛을 피할 수 있는 계단식 암벽의 그늘로 이동했다.
“후.”
절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섬이 확실한 것 같다.
시원하게 밀려오는 파도를 보고 있다가 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정말 계층 하나하나가 이렇게까지 달라서야. 심지어 내가 보유하고 있던 물과 식량을 강제로 없애버린 대목에서는 진심으로 놀랐다. 아, 뭐야. 벌써 또 목이 마르다고? 배 역시 고프다 못해서 위가 쓰리다. 또다시 야자열매 하나를 뜯어 마시고 과육을 섭취했다.
‘일단은 그늘에 있자.’ 수분을 채웠더니 배가 고파도 그럭저럭 참을만했다.
뙤약볕에 돌아다니는 건 좋은 판단이 아니라고 생각에 해가 약해지기를 기다렸다.
흐어, 겁나 멀쩡했는데 그 새 거지꼴이 다 됐다. 배고픔이 고통으로 변하며 윌틈 퀄른의 대회의장에서 먹었던 산해진미가 머릿속을 맴돌 때쯤, 마침내 해가 산등성이에 걸리기 시작한다.
그래, 지금이다. 이때를 기다렸다. 과일 말고도 뭔가 먹을 걸 찾아야만 한다.
‘물고기 같은 건 못 잡나?’ 바닷가로 나갔더니 조개가 보여서 곧바로 주워 담았다.
수상쩍은 놈들은 손도 안 대고, 관찰창이 활성화되는 내가 아는 놈들로만.
귀환자들의 말대로 시련에 떨어지기 전에 온갖 종류의 도감을 공부해뒀던 것이 계속해서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곧바로 조개 하나를 까서 내장은 버리고 관자를 입안에 넣고 씹었더니 꿀맛이다. 인벤토리에 수확물을 챙긴 후 이번엔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오?”

태양이 그렇게 뜨거웠는데 물이 이렇게 시원하다고?
병신 같은 물리법칙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아니면 우리나라 동해처럼 북쪽 편에서 한류라도 흘러내려오나? 그래도 좋았다. 멱을 감은 후 물 속에 들어가서 먹을 수 있는 걸 찾아보았다. 오, 물고기가 있다. 그것도 꽤나 많이. 단검 끝부분으로 손바닥 크기의 물고기를 정조준해서 그대로 찔렀다.
“그래, 이거지!”
[?랙 피쉬] EOS파워볼
아이템 등급 : F
사용 효과 : ?취 시 6?분 동? ?독 ?? + ?
재사용 대기시간 : 없음.
특징 : ?명적인 ?을 ?금고 있?.
“······.”
뭔가 대단히 불길하니까 이건 먹지 않는 걸로.
같은 종을 잡고 관찰을 반복하다보면 점차 글자가 채워질 테니, 그 때 가서 확실하게 안전해 보이는 녀석으로 먹자. 그렇게 삼십분 가량을 사냥에 집중하다보니 금세 주변이 어두워졌다.
물고기? 농담이 아니라 30분 만에 진짜 100마리 넘게 잡았다. 수집가 효과가 떴겠는데? 나중에 확인해야지. 늘어난 민첩성 덕분에 사냥은 생각보다 훨씬 쉬웠다.
‘회로 먹을까?’
아니, 그냥 구워서 먹는 게 안전하고 좋을 것 같다.
주변에 흩어져 있는 마른 장작을 모아서 <모닥불 세트>로 불을 지폈다.
윌틈 퀄른을 거치면서 다양한 보조 장비가 생긴 덕분에 여러모로 편리성이 증가했다. 물론 아모르 산양의 물샘을 수통대신 이용한다는 계획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아무튼 첫 날은 살아남았잖아. 지금은 이걸로 만족 할 수밖에.
뭐 됐고.
오늘밤 만큼은 제발··· 로투스홀짝 조용히 보내고 싶은데.
과연 내 뜻대로 될지.
파벽비거(2) 끝.
-by 서필(徐筆)
< 파벽비거(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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