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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유진이었다. 단번에 그녀가 힘썼다는 것을 확인했다. 도대체 저 애는 뭘까? 어느 재벌가의 자식이기에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풀었을까?
“내가 부탁해서 어렵게 뺐어.” “고맙다.” 나는 갈 길을 갔다. 그녀가 앞을 가로막았다.
“쥐뿔 가진 것도 없으면서 주먹을 휘두르면 어떡하냐?” “뭐? 어떻게 알았어?” 나에 대해 정보를 알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어떻게 내 상황을 알았을까?
“그건…….” “무섭네. 나를 조사했군.” 로투스바카라 “피해를 봤으니까 경찰에게 물어봐서 알았겠지.” “너도 내가 먼저 맞은 걸 알고 있을 텐데.” “물론 알아.” “패밀리를 지켜야 하는 거야?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로열패밀리!”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싸움이야.”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응시했다.
“나를 도와주는 이유가 뭐지?” “내가 널 데리고 갔으니까.” 예상대로 소라에게 시켰다. 의도가 있는 게 분명했기에 물었다.
“왜 나를 데리고 갔지?” “경영학과니까 너한테 도움을 주고 싶었어. 사업가들을 알면 좋잖아.” “너를 과시하려고 한 건 아니고?”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아니야.” “나를 어떻게 빼냈는지 설명해 주겠어? 궁금해.” “아빠가 TJ 건설 사장이야. 맞은 오빠는 사촌이고 TJ 엔터테인먼트 부장이야. TJ 엔터가 적자라 아빠 회사에서 지원하고 있어. 그래서 아빠한테 부탁한 거야.” “돈줄로 목을 감았다? 참 편리하네.” TJ 그룹은 재계 5위 안에 드는 기업이었다. TJ 건설은 국내 최대의 건설사였고, TJ 캐피탈은 몇 개의 저축 은행을 가지고 있으며 신용카드 사업 진출도 준비하고 있는 거대한 금융사였다.
민유진은 생각보다 더 대단한 재벌가의 자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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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알았으니 헤어져야 했다.
“네가 여기까지 올 이유 없어. 나는 간다.” “집까지 바래다줄게.” “차도 못 들어가는 골목이야.” “그럼 아침이라도 먹고 가.” 어제저녁부터 밥을 먹지 못했으니 배가 고프긴 했다. 또한, 어제 일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너는 까다로울 것 같은데.” 나는 건너편에 있는 순댓국집을 바라봤다.
“그렇지 않아. 다 잘 먹어.” “가자.”로투스홀짝 그녀의 말은 거짓이었다. 내장이 들어간 순댓국을 보는 순간 민유진은 잔뜩 눈썹을 찡그렸다.
“먹지 않아도 돼.” “좀 징그럽다.” “기사님 드시라고 하면 되겠네.” 나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괜찮아. 저분은 이따 들어가서 밥 먹으면 돼. 내가 먹어 볼게.” 민유진은 내장을 걷어 내고 순대를 하나 먹었다. 먹어 본 적이 있는지 거부감은 없었다.
“순대는 먹는구나.”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먹어 본 적 있어.” “TJ 엔터테인먼트 사장은 그 친구 아버지겠지?” “응.”
“돈이 많으면 뺑소니도 용서가 돼. 사람 때려도 봐줘. 마약 해도 풀어 줘. 참 좋은 세상이야.” “다 그렇지는 않아.” 사실 나는 너무 신기했다. TV에서나 보던 재벌가 사람을 바로 앞에 두고 순댓국을 먹고 있다니. 다른 세상의 생명체를 만난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네가 나를 도와주지 않았으면 나는 구속됐을 거야. 괘씸죄로.” “맞아. 합의는 안 했을 거야. 너에게 벌을 주려고 했겠지.” “내 편이 없잖아. 다들 눈 감고 있을 테니까 내가 먼저 때린 것으로 결정 날 거고, 네 사촌 오빠는 과다 진단서를 끊었겠지.” 민유진은 말이 없었다.
“그 오빠 이름이 뭐냐?” “왜?”
“기억은 해야지. 나중에 사과하려면.” “민필혁이야. 나이는 스물여덟 살이고. 네가 사과할 필요는 없어. 내가 대신 얘기할게.” “그래. 미안하다고 꼭 전해 줘라. 우러러봐야 할 분을 미처 알아뵙지 못했다고.” “삐딱하네.” 나는 순댓국을 다 먹고 일어났다.
“계산은 네가 해라. 네가 먹자고 했으니까. 간다. 학교에서 보자.” “야! 그냥 가냐? 이거 가지고 가.” “뭐?”
뒤를 돌아보자 그녀의 손에 모자가 들렸다. 머리에 상처가 난 것을 보고 준비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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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 있네.” “그렇게 무식한 애 아니다.” “고맙다.” 다행이었다. 엄마에게 걸리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모자로 가리면 됐다.
나는 민유진에게 손을 흔들고 집으로 향했다.
머리에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민유진 아니었으면 인생을 망칠 뻔했다. 거대한 괴물과의 싸움에서 내 뼈와 살은 완전히 처참하게 갈렸을 것이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 * 집에 들어오자 다행히 엄마는 자고 있었다.오픈홀덤 새미는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무심하게 뒤돌아봤다.
“술 마신 거야?” “아니. 회사에 일이 있어서.” “모자는 왜 썼어?” “선물 받아서 쓴 거야.” “잘 어울리네.” 새미가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집에 들어오니 척추를 꽉꽉 누르고 있던 긴장이 풀어졌다.
오늘은 구로공단 공장 지역에 전단지를 돌려야 하는 날이다. 피곤하더라도 팀원들과 구역을 나눴기에 반드시 해야 했다.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나갈 준비를 끝냈다. 새미는 여전히 TV에서 나오는 노래를 듣고 있었다.
“엄마 깨면 씻고 나갔다고 그래. 일하고 바로 학교에 갈 거야.” “오빠는 왜 이렇게 바빠? 돈은 많이 버는 거야?” “많이 벌지. 5월에는 학원에 보내 줄게.” “진짜?” 고개를 홱 돌려 바라보는 눈에 환희가 가득 찼다.
“내가 거짓말하는 거 봤어?” “와~ 신난다.” 새미는 나에게 달려와서 와락 안겼다. 열세 살의 나이라 소녀티가 물씬 나는데 아직도 내게는 아기였다.
“열심히 해. 오빠가 지원할게.” “고마워. 역시 막내 오빠가 최고야.”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알았어. 열심히 할게.” “엄마 계속 주무시면 네가 밥 차려 먹고 학교 가. 할 수 있지?” “응. 알았어. 잘 다녀와.” * * * 구로동에서 가리봉동까지 이어지는 공단. 대부분은 입구에서 경비가 지키고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음료수와 전단지를 경비원에게 주고 간단히 설명했다. 운 좋게 사무실로 들어갈 수 있으면 전단지 몇 장을 책상에 두고 나왔다.
이른 시간이라 사무직은 보이지 않았고, 근로자들만 간간이 보였다. 굴뚝이 모여 있는 지대로 들어갔다. 세이프게임 검게 나오는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며 새벽 공기를 오염시켰다.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이었다.
경비실 앞으로 들어가는데 퇴근하는 근로자들이 줄을 지어 나왔다.
삶의 신산함이 얼굴에 가득 묻어 보는 내가 안타까울 정도였다. 생명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표정에 힘없는 발걸음.
“율무야!” 무리 가운데서 뛰어나오는 사람. 단번에 영태라는 걸 알았다.
순간 호칭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했다. 나보다 두 살이나 많았고 촌수로 당숙이다. 어릴 때야 친구로 지냈어도 지금은 성인이다. 더욱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만날 기회가 없었기에 다소의 어색함도 있었다.
하지만 영태의 얼굴을 보자마자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어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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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태야, 정말 오랜만이다.”세이프파워볼 “네가 여기에는 왜 왔어?” 영태는 내가 입은 양복을 보고 말을 이었다. 나는 영태의 표준말이 어색했다.
“사투리 안 쓰네.” “여기서 생활하다 보니 안 쓰게 됐어. 너는 직장 다녀?” “아니. 지금은 학교 다녀. 아르바이트로 정수기 팔고 있어.” “그렇구나. 학교는 어디 다녀?” “K대학교 경영학과에 들어갔어.” “어릴 때부터 똑똑하더니 좋은 학교에 갔구나. 그런데 여기까지 정수기 팔러 왔어?” “공단 주위 다 돌아다니고 있어.” “쉬운 일이 없구나.” 영태의 우량하던 몸은 말랐고, 이가 누렇게 변해 고생하고 있음을 쉽게 알았다.
“여기는 공장인가 봐.” “도금 공장이야. 고등학교 졸업 후 여기서 3년째 일하고 있어.” “어디 사는데?” “가리봉동에 있어. 집은 보여 주기 좀 그렇고. 좁거든.” “아픈 곳은 없어? 안색이 별로 안 좋아.” “야간 해서 그래. 열네 시간 일했거든. 돈을 많이 벌려면 열심히 해야지.” 나는 목화밭에서 맹세했던 우정이 생각났다.
“능주는 뭐 해?” “외지 나갔지. 촌에서 농사짓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인천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어. 명절에도 잘 오지 않나 봐. 보기 힘들어.” 나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시골에 가지 않았다. 가끔 큰형이 벌초했고, 나는 아르바이트하랴, 공부하랴 여유가 없었다.


“너도 오지 않지?” “바빴어.” “좋은 학교 들어가려면 공부 많이 했겠다.”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남은 공장에 전단지를 돌리고 학교에 가야 했다. 영태의 얼굴도 피곤해 보여 이쯤에서 헤어져야 했다. 나는 명함을 건넸다.
“시간 있을 때 연락해. 삐삐 연락처도 있으니까 밥이나 같이 먹자.” “능주랑 셋이 한번 봐야 하는데 말이야.” “그럴 날이 있겠지.” 터벅터벅 걸어가는 영태의 그림자가 무척 슬프게 보였다.
이것이 가진 자의 감상일까? 열심히 제 삶을 감당하는 그의 모습 자체로 봐야 했다. 내 관점에서 볼 일은 아니었다.
조금 한가해지면 만나서 근사한 식사를 같이하고 싶었다.
무거운 마음에 등을 돌려 걷는데 멀리서 영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율무야!” “어?”
“목봉결의, 잊지 않았지?” 파워볼사이트 “잊을 리가 없지. 꼭 능주랑 같이 만나자.” 위뜸의 괴롭힘을 함께 이겨 내자고 맹세했던 어린 시절. 서로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무조건 도와준다는 약속이었다.
목화밭 냄새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 * * 첫 강의가 끝나고 피곤해서 책상에 엎드려 있는데 석우가 등을 두드렸다.
    “율무야, 누가 너를 찾아왔다. 여학생인데?” “여학생?” “예쁘게 생겼어.” 나는 고개를 들어 문을 바라봤다. 문 옆에 수줍은 표정으로 서 있는 소라가 입술을 앙다문 게 보였다. 어제 일을 사과하러 온 것이 분명했다.
    그걸 소라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이 세계 시스템이 잘못된 것이지.
    나는 일어나서 소라에게 갔다. 다른 친구들이 얘기를 듣는 게 싫어 복도 끝 계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라가 나직하게 말했다.

“미안해.”세이프파워볼 “별일도 아닌데 마음 쓰지 마.” “내가 데리고 갔잖아.” “유진이한테 얘기 들었어.” “그래. 유진이가 힘을 썼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미안해.” “네가 잘못한 거 없다니까. 네가 그러면 내가 더 미안해진다.” “괜찮은 거지?” 사슴같이 순수한 눈동자.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져 따뜻했다.


“됐어. 지금 학교에 있잖아. 그런데 너희 아빠는 유진이 아빠 비서야?” “응. 10년 넘게 일했어.” “세상 참 옳지 않아. 돈이면 뭐든지 다 되는 세상이니까.” “자본주의잖아.” “그렇지.” 나는 그 말이 재미있었다. 그렇다고 혁명을 꿈꿀 수도 없고. 순응하는 것이 사는 이치였다.
“볼셰비키혁명을 일으킬 수도 없고.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야지.” “하하하. 그렇지. 아직은 군사정권이잖아.” “시대가 바뀌면 나아질까? 너는 어떻게 생각해?” “깊게 생각한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 소라가 웃으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둘째 형은 민주 정권이 들어서면 우리나라 사회도 발전할 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다지 희망이 없었다. 데모하다가 군대에 끌려간 형의 좌절을 보면서 힘없이 까부는 건 불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부모님이 고생하는 게 싫어서 막연하게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했고, 지금은 엄마 빚과 새미 학원비, 내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 열심히 정수기를 팔 뿐이었다.
어제의 일은 내 의지를 더 견고하게 만드는 계기였다. 다시는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 싶지 않았고, 주위 사람들도 보호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선한 의지로 세상을 조금은 더 인간답게 만들고 싶었다. 물론 내가 돈의 맛을 알고 경제적으로 상위 계급에 속하게 된다면, 그땐 나도 그들처럼 변할지도 모른다.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선한 의지가 강했다.
“곧 시험인데 공부는 하고 있어?” 그러고 보니 중간고사가 멀지 않았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누나 몰래 돌을 던져야겠다.” “응?”
“퐁당퐁당. FDFD.” “하하하.” 소라가 웃으니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이유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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